경제칼럼-손민호 한국은행 포항본부장

손민호 한국은행 포항본부장

'갑을 관계'와 함께 우리 사회의 대표적 불공정 관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대형마트와 재래시장간 문제, 이른바 Super SuperMarket(이하 SSM) 문제가 최근 몇 년간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형마트의 휴무일수 확대, 취급품목 일부 제한 등 몇 가지 개선방안들이 제시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듯하다. 다만 SSM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해결방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와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필품과 식료품 시장의 SSM 문제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면서도 그 심각성이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우리 사회에 또 하나 있다. 바로 대형서점과 중소서점간의 불공정 경쟁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전국에 3천459개였던 서점이 2012년에는 그 절반 수준인 1천723개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포항지역의 경우에도 1990년대 한때 서점수가 125개까지 이르렀으나 최근에는 서점·문구 혼합형 점포를 포함해 4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서점들이 도서판매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게 되자 문구도 함께 취급하면서 순수 서점은 대형서점 3개 점포를 제외하곤 멸종된 지 오래다.

서점수가 이처럼 감소하고 있는 것은 구매하기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대형서점 중심의 인터넷 거래 비중이 전체 도서 매출의 30%에 이른 데 주로 기인한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도서유통시장에서의 SSM 문제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데에는 무엇보다도 일반대중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중장기적 지적 풍토와 관련해 보면 도서유통시장에서의 과점현상 심화는 '출판사-서점-도서구매자'의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 이상으로 크나 큰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즉, 중소서점의 감소와 인터넷을 통한 도서구매 확대는 서적 구매자들이 자기가 읽을 책을 직접 서점을 방문해 고민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입소문, 언론보도, 인터넷 서평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잘못된 친구를 사귈 위험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수 있으나 나만의 새로운 친구와 만날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에서는 염려스럽다.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책을 보게 될 경우 사고의 틀이 획일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사고의 편중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도서 수요에 있어서 이처럼 쏠림현상이나 편식습관이 만연하게 되면 무명의 창작 작가들, 비인기 저자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이에 따라 창의적인 아이디어, 다양한 생각들도 함께 묻히게 될지 모를 일이다. 도서유통시장에서의 SSM 문제 심화로 인해 도서상품권 사용 제한, 대형서점의 진출지역 한정, 도서유통가격 정가제, 공공도서관의 지역서점 의무 거래와 같은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됐으나 업계의 중론은 이러한 방안들 또한 현실적 제약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정부와 소비자의 무관심으로 중소서점들은 빈사지경에 자포자기 상태다. 우리 모두가 도서유통시장이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 해결방안 모색에 보다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나아가 우리 지역에서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기풍을 확산시키면 동네 서점을 살리는 데 일조하면서 책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일석이조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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