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제목만 보면 영락없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다. 우리별이라는 행성에 사는 얼룩소의 이야기 같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우리별…'은 아이들보다는 성인들이 공감할 만한 애니메이션이다. 애틋한 첫사랑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마법 때문에 여성성을 가지게 된 인공위성과 실연 탓에 마음을 잃어버린 남자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 극복기를 그렸다.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목소리 정유미). 20년 동안 같은 곳만 바라보다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생겼다.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로에서 노래 부르는 무명가수 경천(유아인).

하지만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일호. 그리워하던 것들과 마음속으로 작별한 그녀는 마침내 수명이 다해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고, 그 추락 과정에서 어떤 마법에 휘말려 로봇소녀로 변신한다.

오랫동안 지구를 지켜보면서 그 대상물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은 '나의 지구를 지켜줘'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그러나 인공위성이 주인공이고, 그 인공위성이 아톰처럼 로봇소녀로 변신한다는 점은 신선하다.

경천의 이야기는 88만 원 세대의 아픔이 진하게 녹아있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젊은 세대들이 마음 편히만 살 수 있다면 동물로라도 변하고 싶어하는 현실은 만화로 창조된 세계지만 작금의 척박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화장지 마법사, 흑돼지인 북쪽마녀, 간을 사냥하는 오 사장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꾸며준다. 여기에 가끔 나오는 달콤한 주제곡들이 흐르면서 극에 낭만적인 감성마저 불어넣는다.

예쁘거나 세련된 그림체는 아니다. 오히려 1980~90년대 국내 애니메이션처럼 다소 투박하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이야기 속에 어려운 현실을 녹이고, 그런 신산한 삶 속에서도 신기루처럼 아스라이 형성되는 사랑의 감정을 포착한 감독의 연출력을 주목해서 볼만하다.

단편 '무림일검의 사생활'로 주목받은 장형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작기간만 5년이 걸렸다.

2월20일 개봉.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8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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