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삼국통일 정신 이어 유라시아대륙까지 달려가는 웅대한 꿈 실천으로 옮겨야

곽성일 사회2부장

2천년 전 신라인들의 '삶'(生)은 치열했고, '이상'(理想)은 눈부셨다.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 '덕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에서 '신'(新)과 '라'(羅)를 취한 '신라'(新羅)가 이천년 전 한반도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해 935년 멸망할 때까지 1천년에 8년이 모자라는 992년을 존속(存續)했다.

세계 역사상 신라보다 오래 존속한 나라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1058년(395~1453)으로 신라보다 66년 길었다.신라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존속한 위대한 국가였던 것이다.

'신라는 곧 경북(慶北)이자 경북인의 자긍심(自矜心)이다.' 경북은 늘 역사의 중심에 서왔고 또 주도를 해왔다.

'삼한일통'(三韓一統)으로 한반도 최초의 단일국가를 이뤄낸 신라인의 '이상향'(理想鄕)은 '불국토'(佛國土) 건설이었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불교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 중심은 '서라벌'(徐羅伐) '경주'(慶州)였다.

신라천년 수도 경주에는 문화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주는 신라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사상체계가 이어져온 곳이다.

신라 불교는 호국불교로서 한반도 통일국가의 안녕과 민중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고려시대에 더욱더 꽃을 피웠다.

신라에는 원효와 의상 등 한국을 대표하는 고승들이 불교철학을 설파하며 국가지도이념은 물론 민중들의 삶의 방식도 제시했다. 고려시대는 신라 불교이념이 그대로 투영된 사회였고 숭유억불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도 경주는 국가 통치이념의 발상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출신인 회재(晦齊)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이 중국에서 태동한 주자(朱子)의 성리학(性理學)을 중국보다 더 정교한 논리로 체계화 시켰다. 회제의 학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거쳐 조선시대를 관통한 이념으로 자리매김 했다.

경주는 아득한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통치이념은 물론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담당하는 '철학적 담론'을 생산하는 '거대한 지식창고'였다. 이처럼 경주는 신라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사상적 근간을 이어온 '뿌리깊은 나무'이기도 했다. 신라의 이 사상체계가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을 존재케 한 '원형'(原形)이다.

2015년은 신라가 건국한지 2072년이 되는 해로 경북도청이 새 보금자리로 이전을 한다. 그래서 신도청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의미있는 해이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경북이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한다. 신라문화가 대한민국 문화의 시작이 듯이 완성도 경북인의 몫이다.

경북인은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을 이어 남북통일을 이루고 저 멀리 시베리아와 실크로드를 거쳐 유라시아대륙 까지 달려가는 웅대한 꿈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자리매김 하게 할 경북인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이자 책임과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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