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중생을 구제하는 법음 서라벌 너머 세상 속으로 울려 고통받는 중생들이 없어지길

곽성일 사회2부장

신 새벽에 들리는 범종 소리는 알 수없는 마음에 깨달음을 발견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鐘) 소리가 듣고 싶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종소리를, 내 마음속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어 그저 막막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나는 한해가 바뀌는 때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울려 퍼지던 성덕대왕신종 소리를 듣고 큰 위안을 얻곤했다.

종이 보이지 않는 월성에서 바람에 실려오는 종소리를 들었다. 내 마음은 혼란스러움에서 금새 마법같이 평온을 되찾았다.

이처럼 성덕대왕 신종소리는 뭇 생명들을 일깨우고 삶의 활력을 주는 '법음'(法音)이다. 이 법음은 올해도 울리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신종이 균열로 소리를 내지 못할까 우려하는 사람들로 인해 멈췄다. 1992년 제야(除夜)에 서른 세 번 종을 친 뒤 한동안 타종(打鐘)을 중단했다가, 1996년 학술조사를 위해 시험으로 타종했다. 그 뒤 2001년 10월 9일, 2002년 10월 3일, 2003년 10월 3일에 타종 행사를 열었으나, 이후로는 보존을 위해 타종을 중단했다.

그러나 불국토라는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치열한 구도의 삶을 살았던 신라인들이 만든 신종은 법음을 멈추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다. 장기간 타종으로 누적된 금속 스트레스로 '보존'해야 한다는 명분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필흥이 지어 새겨진 종명(鐘銘)에는 신종소리를 도가의 지극한 도(道)와 석가의 원음(圓音)에 비유하고 천지사방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소리가 이르는 곳은 곧 '선계'(仙界)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종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1천여자의 명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한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해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며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이 종소리 들리는 곳마다 악은 사라지고 착한 마음 피어나소서. 나라안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이는 잔잔한 물결처럼 고르게 깨달음의 길에 올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신종의 소리는 세상에서 유일한 소리이다. 현재 어떤 종도 이런 소리를 내지를 못한다. 때문에 한국의 소리로 뽑히기도 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무려 1천3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등 숱한 수난을 당해왔다.

1465년(세조 11) 봄에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경주에 와서 봉덕사 신종(성덕대왕신종)찾아 읋은 시가 있다.

'절은 폐허로 변하였고/종각은 무너졌다/가시덩굴에 종이 반쯤 묻혀 있으니/목동이 막대기로 때려 울리고/ 풀을 뜯던 소들이 뿔로 떠받고 갈았다'는 글을 남겼다.

신라 사람들에게 종소리는 부처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은 타종으로 인한 고통을 끝없이 인내한다. 비록 내 몸이 깨트려질지언정 세상을 향한 구도의 종소리를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다. 뭇 중생을 구제하는 법음은 계속 서라벌을 너머 세상 속으로 널리 울려 퍼져야한다. 고통받는 중생들이 없어지는 그날,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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