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꾸짖지 않는 어른들

제과점 진열장에 놓인 데코레이션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아이를 보자 놀라서 달려와 야단치는 주인에게 그 아이의 엄마는 이렇게 대들었다.
“그까짓 케이크 하나 돈으로 물어주면 될텐데, 왜 그만한 일로 남의 아이를 야단쳐서 기를 죽이냐?”고.
호통을 친 쪽은 오히려 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아이의 엄마같은 사람들이 대체로 고등교육을 받은 분들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다원화된 사회와 경제생활 수준에 비례해서 각 가정마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과 성은 끝없이 상승되어 이제 어느 가정이고 집안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교육하는 길은 남들보다 더 잘 먹이고 입혀서 , 공부 잘하게 해서 일류대학에 보내 남부끄럽지 않게 출세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를 죽여서도 안되고 남의 눈치를 보거나 양보를 해서도 안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하는 이상이 이론적으로야 어떻든 이러한 것들이 많은 부모들이 실천하고 있는 교육현장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자녀가 하나인 가정이 많아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열의는 자연집중적으로 뜨거워질 수 밖에 없다.
도시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피아노, 미술, 영어학원 등 두세군데로 내몰고, 중고등학생들은 선택과목의 내용, 자율학습, 독서실을 거쳐 대학입시에 이르면 그들의 교육론은 그 대단원을 이룬다.
공부란 잘해주면 됐지 그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무관심한게 사실이다.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아니면 어른들 자신도 여기에 대해 무감각한 실정이다. 입시생이 있는 집안은 사뭇 비상사태에 가깝고 그들의 공부방은 성역이 된다.
온 가족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는 설령 그릇된 행동이 있더라도 누구하나 꾸짖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방임하는 것이 어디 부모 뿐인가? 학교나 사회에서도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꾸짖는 어른들을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다.
차 안에서 떠들거나 많은 사람 앞에서 불쾌한 언동을 해도, 주머니에 손을 낀 채 선생에게 대들어도 그들을 호되게 나무라는 어른들은 거의 없다. 제도에 따른 처벌이 고작일 뿐...
사회라는 곳은 남들과 어울려 사는 곳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사회규범이 있으며 그 규범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구 억제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 단순하고 상식적인 진리마저도, 자신있게 설득하여 그것을 어겼을 때는 엄격하게 꾸짖는 어른들이 날로 줄어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부모들이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고 마음껏 자유롭게, 남보다 더 잘 키워야 한다는 막연한 자기중심적 교육관에서 하루 속히 깨어 자신의 교육관이 과연 옳은 것인지 냉철히 점검해야 하리라고 본다. 애매하고 불확실한 맹신은 무지보다 더 유해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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