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니의 지방정치학

신정 울진군수가 뇌물수수죄로 법정구속되었다.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그만은 아닐 줄 알았다. 누구보다 신선하게 다가온 그였기에 세간의 충격은 더 컸다. 이따금씩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남김없이 태우는 아름다운 퇴장이다. 이 밤 옥중의 신군수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지금은 옥중에 있지만 그도 한때는 화려한 별이었다. 국방의 별이었고 지방자치시대의 별이었다. 反DJ정서의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나타난 한줄기 혜성이었다.
견고한 지역주의를 무너뜨릴 작지만 큰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그는 그 배경의 여세를 몰아 청와대를 감동시켰고 그가 별을 딸 때보다 더 쉽게 천문학적인 예산을 따왔다. 비록 우리의 착각이었다고 할 지라도 시작만큼은 가히 ‘한국의 이와쿠니’라고 불러주어도 손색이 없는 행보였다.
세계적 증권회사인 메릴 린취의 유력한 최고 경영자자리를 박차고 인구 8만여의 소도시 이즈모를 모범적인 자치도시로 일으켜 세운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 시장, 그는 일본 지방자치사의 별이다. 그는 시장과 관료의 권위를 시민들의 높이로 낮추었다. 스스로 낮아져 먼저 쓰레기를 주웠다. 신군수 역시 앞장서 빗자루를 들었을 만큼 신념과 용기가 있었다. 열정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두사람의 행로는 판이하다. 신군수가 감옥으로 자리를 옮긴 반면 이와쿠니는 시장직을 훌륭히 마무리하고 衆議員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쿠니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강연을 하는 등 이즈모에 심었던 자신의 지방자치학을 가르치는 전도사로서도 여전히 존경받고 있다. 신군수와 이와쿠니의 행로를 그토록 극단적으로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정신과 철학이 담긴 지방자치학이었다.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접근하는 자세에서 이와쿠니와 신군수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이와쿠니는 자신의 중심에 지방자치를 가져다 놓은 반면에 신군수는 자신을 지방자치의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 따라서 자연히 한사람은 버릴 수 있었고 한사람은 버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와쿠니는 돈을 버렸고 신군수는 그러지 못했다. 즉 이와쿠니는 메릴 린취의 높은 연봉을 서슴없이 버리고 1/10에 불과한 이즈모 시장을 택했던 데 반해, 신군수는 군에서 길들여진 ‘뇌물 慣性’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선된 첫해부터 그 늪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이와쿠니의 지역구인 이즈모시와 시마네현은 자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당내 최대 파벌의 영수인 타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수상이 버티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그 배경만으로도 정치적 성공은 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쿠니는 자민당과 사회당 등 여·야당의 연합공천을 통해 시민의 정치통합을 이룸으로써 탈정치 내지 특정 정치색을 버렸지만 신군수는 그렇지 못했다. 이와쿠니가 연고의 악습을 버렸는데 비해 신군수는 그러지 못했다. 두사람이 가진 자치 정신 즉 지방자치학의 차이다.
자치는 말 그대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것은 곧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삼갈 줄 알아야 하고 항상 바르게 가져야 한다. 때문에 자치는 그 무엇보다 어렵다. 비전과 신뢰를 상실하고 절반의 성공에서 중단된 울진의 미래, 선장없는 배를 젓고 있는 울진 군민들, 이것들이 ‘신군수 지방자치학’의 결론적 자화상이다. 난개발, 무소신, 무철학으로 점철되고 있는 작금의 우리 지방자치학 역시 신군수의 수준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자치철학이야말로 지방자치의 勝敗를 가름할만큼 중요하다. 견물생심은 인지상정이라고, 우리의 정치구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져야하는 原罪라고 밀어붙이기에는 이와쿠니 지방자치학의 울림이 너무 맑고 크다. 옥중의 신군수나 남아 있는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이와쿠니의 지방자치학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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