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가적 풍경, 고향사랑 요소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것 같더니 마침내 향수가 없는, 향수를 만들 수 없는, 아예 향수를 모르는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며 향토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 사랑의 종류가 다양하기 짝이 없고 그 농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고향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은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것이 사랑의 일종일 수도 있지만 사랑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사랑한다는 그 원 뜻은 상대, 곧 사랑의 대상을 아낀다는 것이다.
이성간에 발생하는 육체적인 욕정도 사랑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초보단계의 사랑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한 물리적인 사랑은 아껴줌이 없기에 오래가지 않는다. 고향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향토며 고향사랑의 첫째 요소는 목가적인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을 어귀에 수 백년을 한결같이 버티고 서있는 느티나무며 팽나무며 회화나무같은 우람한 당산목들이랑, 사시장철 옥수가 졸졸 흐르는 마을 앞 시냇가에 늘어선 수양버들이며 양버들 같은 나무들, 그 그늘 아래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들이며 개들의 한가로운 풍경같은 것들이 없으면 고향이라는 진미는 반쪽이 된다.
숲을 베어내고 연꽃이며 갈대 우거진 습지를 메꾸어 세워놓은 콘크리트 투성이의 삭막한 고장을 자기의 고향이라며 진실로 사랑하는 이는 거의 없다.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온갖 것들이 하나같이 수더분한 자연 속에서 나온다. 비록 가난에 찌든 옷차림으로나마 산토끼며 사슴들 마냥 맑은 하늘을 이고 뛰놀던 곳 그러한 곳들인 것이다.
어촌이 고향이던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 맑디맑은 바닷물이 그리운 것이고 어부보안림 속을 뛰놀던 추억들이 향수가 되는 것이다. 온 종일을 걸어도 트럭 한대 마주칠까말까 한 해변 숲길을 총각선생님과 어우러져 노래하며 춤추며 온갖 이야기 꽃피우며 무작정 걸어가던 추억들이 향수가 된다.
그러다 마침내 허기진 배를 친구 집 꽁당보리밥으로 채우면서 하염없이 깔깔대며 행복해 하던 추억들, 마당에 모깃불 피워 올리고서는 멍석 깔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비지땀으로 밀어 애호박 듬뿍 썰어 넣은 칼국수를 먹는, 그런 저러한 정경들이 곧 향수인 것이다.
현대 서구식 사상에 도취되면서 도시의 급성장으로 국민 절대다수가 사랑이 없는, 그래서 향수도 없는 고향을 갖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10%도 못된다는 농어촌 주민들마저 도시화의 신물결에 밀리고 표류하면서 차츰 차츰 고향이라는 본래의 맛을 앗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숲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삭막한 도시형 주거환경이 우리의 후세들로부터 사랑할 대상인 고향을 수탈하고 있는 격이다.
향수를 모르는 세대들에게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사랑할 고향이 없는 그네들의 정서가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은 한번쯤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며 살아가야 할 과제이다.
포항과 영천이 이 한 여름을 지나면서 연속 최고온 기록을 다투듯 세워서 우리를 짜증스럽고 망신스럽게 했다. 숲이 부족한 탓이라는 걸 이제는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숲은 쉽사리 조성되지 못하고 있고 이치에 어긋난 조림을 고집하다가 대형 산불 유발로 하나 둘 잃어버리기만 하고 있다.
낭만이며 서정적인 정서가 깃들 만한 숲들이 도시 주변에는 태부족인 것이 이날의 내 고장 우리의 향토인 것이다.
덩달아서 민심마저도 장삿속으로만 치닫고 있어서 생각이 깊은 이들이 우울해하는 도시로, 농촌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의 역사는 이 날 우리들의 행보를 과연 어떻게 평가 할 까?
고향을 없앤 세대들이라고 기록된다면 그것은 실로 무서운 또 하나의 불명예일 터인데, 막상 더 잘먹고 잘입고 싶은 목적에만 급급한 것임에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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