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선(경주초등학교 교사)

삼월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던 나무들이 마치 제 이름을 말하듯이 눈을 뜨고 있다. 늦게 눈을 틔운다고 ‘느티’란 이름이 붙었다는 느티나무 주변만 아직 잠잠하다.

아이들도 삼월 한달을 지나며 대부분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알쏭달쏭하던 아이들 이름과 얼굴이 제자리를 잡는다.

꽃눈인지 잎눈인지 알 수 없던 것들도 이젠 색깔을 분명히 한다. 어떤 것은 잎을 먼저 틔우고, 어떤 것은 꽃을 먼저 틔운다. 봄의 나무들은 대부분이 꽃을 먼저 틔운다. 개나리며 진달래, 목련, 산수유, 복사꽃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여린 잎사귀들이 햇볕을 받으며 초록이 깊어지듯이 아이들의 눈빛도 몸짓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교사들끼린 얼굴을 익히지 못하고 있다. 각자 교실로 들어가고 나면 동학년 간에나 얼굴을 볼까, 퇴근할 때까지 다른 직장 동료는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동료 교사와 학부모를 구별하는 방법을 실내화를 보면 알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시내 어느 학교에선 일학년 신입생처럼 교사들도 이름표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마디씩 하고, 교장 선생님은 학년 담임 배정표를 들고 회의 때마다 얼굴을 익히는 정성을 보여주고 계신다.

시골 학교가 가족적인 분위기라면 도심지 학교는 무리가 많다보니 학교 분위기도 도회풍이다.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일 여유도 없고 조용할 틈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정이 들지 않는다.

삼월 한 달이 가도 마음은 아직 손님처럼 드나들고 있다. 이런 내 마음을 들키기 전에 빨리 적응이 되면 좋으련만.

첫날 이름을 익히게 만드는 별난 녀석도 있고, 있는 듯 없는 하여 맨 나중에 이름을 외우게 되는 아이도 있다. 좀 침울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첫날부터 당돌한 질문을 서슴지 않는 아이도 있다.

내 첫인상은 나무껍질처럼 좀 딱딱한가 보다. 해마다 일기장에서 접하게 되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무서운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무섭다고들 한다. 공부 시간에 살살 딴짓하는 녀석들도 눈에 띈다.

벌써 약효가 떨어진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첫출발이 좋아야 한다고 좀 무서운 얼굴을 하고 기선을 제압하려 하지만 길게 가는 약은 없다. 수시로 처방전을 바꾸어야 일 년이 무사하다. 누가 일년 내내 약발이 떨어지지 않는 처방이 있으면 좀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내 귀한 아이의 담임은 어떤 사람일까? 학부모도 탐색기를 가동하는 시기가 봄이다.

벌써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교육청으로 전화가 날아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직접적인 내 문제가 아니라도 한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누군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옥좨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이 이처럼 서로간에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을까?

따뜻한 눈빛이 그리운 계절이다. 단단한 나무들이 어여쁜 꽃눈을 내밀듯이, 닫힌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고대한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노란 민들레가 꽃등을 밝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이 우거지기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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