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근 교수 서거정 詩 주제 논문서 주장

조선시대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서거정(徐居正·1420~1488년)이 세조 8년(1462년) 경주에 와서 신라왕궁이 있던 월성과 그 주변의 풍광을 노래한 ‘경주십이영(慶州十二詠)’에는 조선 유학자들의 신라관(新羅觀)을 함축하고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강석근 동국대 교수는 ‘동악 한문학 논집’제 10집을 통해 ‘서거정의 경주십이영 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계림, 포석정, 문천, 월성, 첨성대 등을 주제로 노래한 서거정의 시를 분석해 보면 조선조 유학자들의 신라를 바라보는 정형화된 관점을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강교수는 서거정의 시를 ‘회고와 영탄의 변주곡’, ‘불교문화에 대한 비판’, ‘망국적 문화에 대한 비판’, ‘충열에 대한 찬양’ 등의 요소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초기에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지어졌던 회고가(懷古歌)는 고려의 멸망을 목격하고 느낀 감회를 읊은 것이다. 이러한 폐망의 고도(古都)를 소재로 하는 문인들의 회고와 반성은 문학적인 관습인 동시에 그 도시를 이해하는 한 방식이다. 이러한 점은 서거정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경주십이영’가운데 ‘오릉비조(五陵悲弔)’는 천년 왕기가 사라진 서라벌의 오릉에서 전왕조를 조상(弔喪)하고 말이 울고 용이 알을 낳았다는 설화를 황당한 공상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조선의 국시에 충실한 불교문화에 대한 비판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거정은 어린 시절 사찰에서 공부했고 많은 승려들과 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불교적인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뿐만아니라 신라가 찬란한 문화를 천년이나 이어 온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서거정은 경애왕의 황음(荒淫), 여왕의 등극, 불교의 성행 등 자의적으로 몇몇 사건과 원인을 결부시켜 신라문화에 대한 비판적 어조를 띠고 있다.
강 교수는 “서거정은 신라문화에서 오직 충(忠)과 의(義), 열(烈)에 대한 내용만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 예로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김유신이나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생 동안 기도하며 기다린 천관녀(天官女)를 숭고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교수는 서거정의 작품을 통해 조선조 초기의 시인이 경주의 풍광과 신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초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불려진 신라나 경주를 대상으로 한 시가의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규범화 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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