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배금사상 만연

유고문화중심의 우리 전통사회는 유교 실천 윤리가 곧 사회적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따라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목표와도 일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첨단 과학문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질만능의 배금사상이 만연했고, 그로인해 파생된 부패와 부조리는 망국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를 안타까워 하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결과론적으로‘쇠귀에 경읽기’십자가 앞에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 왼 격이 돼 버린 느낌이다.
각 지역에서 파생되는 집단이기 싸움이나 가족의 개념까지도 말살 하려드는 지독한 개인주의, 거기다 이른 바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는 여지껏 없을 정도로 참담해진 현실이다.
오로지 전쟁의 논리만이 존재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는 사회에서 어떻게 양보하는 마음을 기대하고 누가 누구를 배려할수 있을 것인가?
이땅의 반 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얼이 담긴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가 세계 어느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숭고하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을게다.
그런 숭고한 정신문화를 기리며 슬기로운 민족임을 내세우는 가치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살펴보면 해답은 자명해진다.
굳이 역지사지(易之思之)의 고사성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은 체면을 중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겸양의 미덕을 가장 아름다운 도덕적 가치로 여기고 항상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민족이었기에 우리네 전통문화가 찬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고 고운자식 매 한 대 더 때리라는 옛 어른들의 교훈적 가르침이 젊은 부모들에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격언이 신세대 학생들에게 냉소받는 사회에서 어떤 말이 먹혀 들겠는가도 싶지만 그렇다고 자괴감에 빠져 그냥 눈감고 귀 막을 수만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의 우리 기성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최소한의 할 일은 반드시 해야한다. 비록 거창한 구호아래 결집된 힘을 과시하지는 못할 망정 작은 실천을 유도해야 할 것 같다.
작은 것에서부터 내가 남을 배려하면 남도 나를 배려하게 되는 원리를 깨우치게 돼야 우선 전쟁논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기지 못하면 당한다는 발상이 지배하는 세대를 이대로 방치 하고서는 세상은 아수라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수라장에서 도덕운동이 먹혀들리 만무하고 학교 교육은 입시만을 위한 교육서적 암기외에 더 얻을게 없는 것은 뻔한 이치다.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 이제 정말 정신차리고 깨어나야 한다. 마음을 열고 나를 위해서는 먼저 남을 배려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된다.
그래서 정신건강을 회복해 가정을 건강하게 하면 여유있는 사회는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