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갈등구조 해소돼야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는 장가가 들고싶어 안달이 난 데릴사위와 그걸 미끼로 죽으라고 일만 시키는 장인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좀 모자라고 바보스럽지만 자기처지가 부당하다는 정도는 알기 때문에 불만의 골은 더욱 깊어가지만 열쇠는 항상 장인의 손에 있다. 장인은 성례를 시켜 달라는 주인공의 성화에 열여섯 나이에도 유별나게 작은 점순이의 키를 늘 핑계삼는다.
물동이를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키 크게 해달라고 성황님께 지성도 드렸지만 4년 머슴살이에도 키는 매양 그대로다. 결국 열쇠를 쥐고있는 장인의 농간에 어수룩한 주인공은 세월만 축내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이 깔고 있는 알레고리는 불평등한 갈등구조를 빚는 양자간의 비뚤어진 맨터리티(mentality)에 있다. 음흉하고 능청스런 장인의 속셈과 착하고 바보스런 주인공의 캐릭터가 대비되어 독자들에게는 흥미를 더하며 김유정 소설 특유의 흡인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당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가슴 답답한 일이 다. 잔소리말고 꼬박꼬박 일이나 시키는 대로 잘하라는 횡포성 주문을 수용하기 힘든다.
우선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힘도 뾰족한 해법도 없으니 애꿎은 가슴만 치게 된다.
밀어붙이기로 이력이 난 권력자의 카리스마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직장인들에게 건강 보험료를 최고 100%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봉급자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의 능청이나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봉급자의 안달이나 김유정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입장과 흡사하다.
정부의 정책실패를 직장인들의 유리지갑으로 봉합하려는 발상에 강한 반발을 표출하고 소득파악이 어려운 지역의료 보험자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며 일이 터질 때마다 직장인만 ‘봉’이 되는 이유 없는 홀대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항변이다.
조합통합 후 지역조합 결손을 막는데 직장조합 적립금을 썼다고 믿고있는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조합 통합을 백지화하자는 야당의 관련법 개정안 제출을 반기는 여론의 근저에는 이런 직장인들의 반정서가 깔려 있다.
말많고 탈도 많았던 의약분업으로 재정은 거덜나고 국민불편은 증대되고 약물 오남용 문제도 개선되지 못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의약분업 실시과정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사들의 폐업투쟁에 정부가 밀리면서 ‘99년 11월 이후 4차례나 의료수가를 인상했을 뿐 아니라 그 재원도 국민의료보험료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과도하게 인상된 의료수가를 내리고 부풀려진 약제비의 거품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기관에서 만연하는 부당허위청구를 제도적으로 근절하는 방안을 찾고 병원경영의 투명성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성토하는 현행 의약분업제도의 문제점을 정밀 검토하여 새로운 제도개선을 하루빨리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구책은 당면한 문제를 푸는 최소한의 해법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어수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익집단의 ‘힘’에 밀려 사리판단을 그르치거나 부당하게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환자에게 절망을 안기는 시책은 시정되어야 한다. 명백한 오류는 바로 고칠 때 진정한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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