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발원지가 새로이 발견되었는데 오대산 어느 골짜기라며 TV 뉴스에서 큰소리다. 우리 고장에서도 그랬었다. 형산강 발원지가 경주 산내면 어느 산골 옹달샘이라느니, 죽장면 어디라느니....
한 강의 시작이 어디 있고 끝이 어디에 있던가?
골짝골짝 수억 조의 실개천이며 돌 틈을 비집고 스며 나온 쪽박 샘물들이 모이고 어우러져서 바다로 흘러드는 것 아니더냐? 소위 과학입국이라는 이 나라의 언론마저 강의 발원지를 따지는 일에 같이 장단을 쳐주는 얄궂은 경우다.
종종 무대에 오른 인간문화재에게 찬사를 보낸다는 게, 한국최고의 소리꾼이라느니 이 나라 최고 춤꾼이라느니...식의 표현을 곧잘 쓴다. 최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베베가 도쿄 올림픽 때 마라톤에서 1등 했을 뿐이지 그렇다고 그가 세계에서 제일 잘 달리는 인간이라고 단정 지울 수는 없는 일, 그 당시 아프리카의 정글 속에는 그보다 더 빠른 토인들이 얼마나 더 살고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 아니던가?
최고라는 말은 순간이요, 수다스러운 허풍선이들의 과포장된 언어일 뿐이다. 하물며 강의 발원지를 발견했다며 발표하는 것도 비과학적이요 허구인 것이다.
언론이란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투쟁하며 그 대가로 먹고사는 업일 것이다. 더욱 조여서 말하자면 언론은 知性(지성)이라는 바늘의 끝 부위와 같은 것이다. 하기에 누구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우리 고장에서 가장 높은 산을 해발 930m인 향로봉이라고 한다.
향토사를 접해보면 우리네 옛사람들은 향로봉이라는 이름조차도 남기지 않고 있다.
지금의 향로봉은 그냥 내연산의 이름 없는 한 봉우리로 취급받았을 뿐 내연산의 主峰(주봉)은 문수봉(653)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머리에 손가락 끝으로 밀면 움직이지만 정작 장정들 여럿이 달려들어 밀어도 결코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기한 큰 바위덩이가 셋 있어서 三動石(삼동석)으로 표현되는 봉우리가 곧 문수봉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어느 산이 가장 높은 산이냐, 어느 봉우리가 가장 높으냐 하는 점에는 그리 따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속신앙인들이 주로 기도처로 찾아드는 七星嶝(칠성등)의 웃머리인 문수봉이 氣(기)가 강하고 바위더미로 볼품이 있었기에 主峰(주봉)으로 예우했을 것이다. 그까짓 높이가 몇 척 더 높고 낮은데 연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푸근함이다. 일등이며 큰 것 만 찾는 사대주의는 원래 우리 네 배달문화 속에서는 배제되었던 흔적이랄까.
그런데 오늘날은 일등만 특별 예우하는 서구식 일등주의의 만연으로 세상을 더더욱 각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도 그렇고 선거 판에서도 그렇다.
100명이 뛰어도 1등은 1% 뿐인 오직 하나이다. 1등주의는 99%를 불만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서구식 사대주의인 것이다. 경쟁력을 키우는 필요악이요 이 세상을 살맛 떨어지게 만드는 속물근성의 풍습이기도 하다.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손기정 선수 일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남승룡 선수가 3위로 입상했던 그 장한 사실을 65년이 지난 이 날에 기억하는 사람마저 별로 없는 각박하고 우스꽝스러운 세상으로 무한정 치닫고 있음이 어쩐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한강의 발원지는 은하계의 별보다 더 많은 숫자일 텐데, 이치에 어긋나는 발표를 자랑스럽게 떠들어 주는 것 자체가 세상을 그르치는 씨알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새겨가며 살아가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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