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간 불균형 시정해야

지난 반세기 중앙집권적 개발독재에 의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지역간 불균형구조를 고착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선진국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했던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압축된 근대화과정 속에서 숨가쁘게 이룩하면서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은 심화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전략적 부문에 투자하여 급속한 근대화를 꾀하는 불균형 발전전략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정당화되기도 한다. 실제로 수도 서울은 한국의 경제활동 중추로서 팽창과 집적을 거듭해 오면서 많은 발전을 이룩해 왔다.
기업이나 인재의 집중으로 대도시 서울은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서울 집중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인재의 편중뿐만 아니라 대학, 금융, 기업 등 모든 자원이나 기능의 서울 집중으로 지역 경제와 지방 대학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 서울 일극(一極) 집중은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공해, 교통, 에너지, 쓰레기 처리 등 거대도시에 수반되는 문제로 ‘서울공화국’이 과부하 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이익이 아니라 과집적에서 오는 비능률로 서울공화국은 중병을 앓고 있다. 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서울의 과집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많은 자원이나 기능을 지역에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위축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 일극 집중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최근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분권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지방분산과 지방분권이 함께 주장되고 있어 혼란스럽다. 엄격히 말하면 중앙집권적 일극 집중의 대안인 지방분권과 지방분산은 별개의 개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방분권이 서울 일극 집중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지방분권으로 지방정부의 결정권이 강화되면 수도권의 지방정부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기업, 대학 등 주요 기능의 지방분산을 반대할 것이다. 인구가 줄거나 기업이 뻐져나가 지역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도기능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하여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과 유사한 근대화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동경 중심의 중앙집권적 발전모형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분권개혁과 분산개혁은 별개로 논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지방분권개혁으로 중앙집권체제는 발본적 개혁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국토 구조의 효율적 재편을 꾀하는 수도권 기능 이전에 대해서도 지난 1950년대 이래로 많은 논의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지방분권론자들은 지방분권과 지방분산에 대한 명확한 논리 정립과 함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지방으로 기능, 자원이 이전되고 지방정부로 권한이 이양되는 ‘분산적-분권적 체제’를 지향해야 하지만, 우선은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시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불균형 문제를 남겨둔 채,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경우 지역간 격차가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기존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에게는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개혁세력은 연대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지방분권운동은 지방을 위한 지방의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과 지방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방분산을 하면 서울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이를 서울과 지방이 공유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분산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방분권운동이 지방만의 외로운 독창이 아리라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이 함께 하는 합창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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