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강도시 흥망성쇠-얼마전 우연히 2편의 영화를 접했다.
한편은 TV 주말영화시간에 방송된 코믹물 ‘폴몬티’이고 다른 영화는 10여년전 작품을 최근 비디오테잎으로 다시 구성한 ‘플래시 댄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스트립쇼를 한다는 ‘폴몬티’의 배경은 영국의 남부 요크셔 철강산업단지.
불황으로 제철소가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를 당해 실업자로 전락하자 그들 중 태평한 이혼남 가즈와 무능하고 뚱뚱한 그의 친구 데이브, 그리고 그들의 예전 공장 감독이었던 제랄드는 결국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성전용 클럽에서 스트립 쇼 무대에 오른다는 요절복통할 이야기 였다.
또 80년대 중반 인기절정의 작품 ‘플래시댄스’는 과거 미국 철강산업의 고향 피츠버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허름한 창고에서 사는 18세의 처녀 알렉스는 낮에는 용접공으로, 밤에는 댄서로 일한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나이트클럽을 자신의 춤을 보여주고 훈련시키는 공간으로 삼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간다.
결국 피츠버그라는 공장도시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수많은 역경과 사랑의 아픔을 헤치고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를 유심히 보면 몰락한 철강왕국 피츠버그의 잿빛 이미지는 영화 내내 계속됐다. 폐허 같은 제철소, 멈춰 선 석탄열차, 버려진 아파트….
두 영화의 공통점은 배경도시가 모두 세계적인 철강도시였다가 결국 철강산업의 몰락으로 철저히 쇠락하고 폐허로 변해간다는 것이어서 진한 인상으로 남아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이 당장 제철소가 서고 페허로 전락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포항제철소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도 하다.하지만 외국 사례를 분석해 볼 때 적어도 전혀 대비하지 않고 미리 대책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철강산업이 “죽음의 계곡”에 직면해 있고 통상 벽이 높아만가고 중국 등 후진 철강국들의 도전이 거센 이 상황에선 기업의 업무혁신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기업사랑도 한몫하는 ‘역할‘이 필요한 때다.
▤ 포항과 제2의 포철신화-포철은 이 같은 선진 철강도시들의 몰락을 지켜보고 오래 전부터 대책을 마련해 온 듯 철강일변도를 탈피, 사업분야를 다변화 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는 철강중심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중장기 경영비전을 통해 생명공학(BIO산업), 정보통신(IT), 신소재분야 진출을 밝힌데 이어 최근 체질개선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건설로 미래 전략사업인 에너지 사업진출을 실천에 옮겼으며 생명공학부문 진출을 위해 올해 초 미국에 ‘바이오사업 추진반’을 설치했다.
포스데이타를 내세운 정보통신부문, 포스코개발을 통한 종합건설분야 도전도 거세다.
그렇다고 포철이 이 같은 철강을 통한 영일만의 기적에 이어 ‘2의 영일만신화’를 포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동을 거는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 포항공대를 지곡동 언덕 위에 세우고 RIST 같은 국내 정상의 연구기관을 바로 포항에 둔 것도 미래전략 산업의 모태가 바로 포항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과 나노산업의 핵심원동력은 포항공대가 맡을 것이며 포철과 출자사가 절대적 자금을 투자한 포항테크노파크, 그리고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철강일변도의 포항 산업구조를 첨단과학도시로 변신시켜 갈 것이다.
▤ 외국 사례-바람직한 기업과 지역의 관계설정을 위해 일본의 사례를 취재했다. 최근 50년간 일본내 대기업이 위치한 네 도시를 대상으로 발전유형을 공생공존형, 기업선도형, 협력교류형, 기업일탈형등으로 구분했다.
▲ 토요타시=1930년대, 불과 1만4천명의 일본 미호로시는 현재 인구 40만명. 54년 자동차 공장유치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59년에는 시민청원이 잇따르자 토요타자동차의 이름을 따서 아예 시이름을 토요타시로 바꿨다
시민 14%가 토요타 자동차에서 일하고 시민들은 주민이 기업을 유치했고 시민의 노동으로 기업이 성장하면 그 대가는 가정과 시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히타치시=세계적 산업도시 히타치시는 90년전 마을이 생기기 전에 공장이 들어선 곳. 현재 20만명의 인구중 40%가 히타치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기업의 법인세가 시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회사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시재정이 악화되자 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 후쿠야마시=2차대전후 80%가 불 타버린 후쿠야마는 1961년 제철소가 들어선 뒤 빠른 속도로 성장해 지금은 일본의 최대 제철소를 보유한 포항의 자매도시. N.K.K의 후쿠야마 제철소는 시민들이 제철소 유치를 위한 단체를 결성하고 공업정비 특별지역을 지정되면서 세워졌다. 시민들이 유치한 만큼 지역사회와 기업의 관계는 대화와 협력으로 연결돼 있다.
▲ 카마이시=신일본제철이 지난 70년 전통어업도시에 용광로 2기를 완공해 본격적인 제철소 시대를 열었지만 신일철은 물류비 부담으로 89년에 고로를 아예 폐쇄했고 한때 10만이 넘던 인구는 4만8천으로 줄었다. 항구는 텅비고 시민들에게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어려움. 당시 시와 시민들은 제철소 폐쇄를 막기 위해 시민모임을 구성했지만 조업축소를 막지 못했다. 번영을 누리던 상가들도 소비가 줄면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지역과 기업의 상생-포항은 이제 포철의 신화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철강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산업 도시로 변화했다 어촌도시에서 철강도시로, 나아가 미래 정보산업도시를 꿈꾸고 있는 포항과 그 속의 포철은 바로 디지털시대의 신화창조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학자들은 이를 ‘압축성장’으로 부른다.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항과 포철은 이제 공동운명체다. 기업이 어려울 때는 지역 주민들이 그 기업을 도와 함께 공존공영의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아왔다.
포철은 설립이후 꾸준히 지역협력활동을 해왔고 구미와 울산 수원 등 국내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볼때도 모범적이고 탁월한 지역 협력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포철이 총체적인 철강불황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기업을 이해하려는 지역사회의 따뜻한 마음의 지원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설립이후 34년 동안 줄곧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지역협력을 해 온 포철에 대해 지역사회 주민들도 ‘기업 감싸주기’로 손을 맞잡아 줄 때 인듯하다.
20년전 가격의 절반값으로 떨어진 철강재,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압력을 가해오는 철강 통상압력과 감산요구, 재고누적이 이어지는 국내 내수부진 등 어찌보면 포철로서는 지금이 창사이래 가장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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