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끼리의 분쟁은 불가피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이버는 1932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적 분쟁과 집단적 분쟁의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종교나 교육에 의해 혹은 이성이나 양심에 호소함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인종, 민족, 계급과 같은 사회 집단간의 경우에는 완전히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이는 집단적 에고이즘은 종교나 교육 등등에 의해 결코 억제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이상주의자, 교육가, 사회과학자는 이 점에서 낙관주의자로서, 그들은 종교적 교화나 교육적 수단에 의해 집단간의 분쟁을 서서히 해결하여 사회의 개선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집단적 에고이즘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집단을 자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성의 로맨틱한 과대 평가’에 기초한 안이한 센티멘털리즘이고, 오히려 집단간의 분쟁은 불가피하며, 힘에 의한 분쟁에 대해서는 힘의 바른 사용에 의해서만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낙관주의적 사상에 대하여 냉정한 비판과 현명한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이익의 극대화다. 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수많은 이익집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익집단을 규제하는 적절한 법과 제도 없이 그 집단의 구성원들 개인의 도덕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지극히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며 현실에 대한 기만이다. 그 실례로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일어난 전문직 종사자들의 타협할 줄 모르는 집단 이기주의가 그렇다.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약분업이 니이버 사상의 입증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은 개인의 도덕 결여에서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그러나 영향력이 큰 대부분의 문제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의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문제의 하나가 교육이다. 최근에 서울의 강남지역에 집 값이 폭등하고 급기야 정부에서는 아파트 10만 가구를 건설한다고 한다. 집 값 폭등에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의 하나가 강남지역에 학원이 밀집해 있고 여기에 교육수요자가 모여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특히 사교육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백년대계는 커녕 교육망국 밖에 안 된다는 것도 모두 공감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5공화국 시절에는 과외 금지도 있었지만 어느 사이에 그 규제도 무너졌고, 작년에는 과외 교사의 신고제도도 만들어졌지만 별 효과도 없는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서는 드디어 집 값 문제까지 야기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교육 문제를 개개인의 실명으로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고쳐야할 병폐로 인식하다가도, 이것이 각자의 문제가 되면 개개인은 실명을 가리고 집단 속의 익명의 개개인으로 변하여 지금까지 문제로 삼았던 그 관행에 스스로를 맡기고 만다. 사실 어느 부모가 돈들인 것만큼 결과가 나오는 줄 알면서 자식에게 학교 공부에만 충실하라고 설교하겠는가.
대학 들어가는 점수 기준마저 사설학원이 제공하는 것을 사용하는 판에 어느 교사가 학교 생활만 충실히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힘주어 말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니이버의 학설을 우리의 문제에 대입시키면 해결책은 이러하다. 부모나 교사나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또 아파트 10만 가구 건설도 사실 미봉책이다. 이런 도덕적 설득에 가까운 대처로는 우리의 사교육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 교육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이에 따른 교육체계를 법과 제도를 통해서 구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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