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교입시 부활 논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의 자립형 사립고교의 설립 논쟁부터 시작하여 얼마전 진념 경제부총리의 “일제 강점기 시대만도 못한 교육정책”이란 발언이 나오면서 이제 “평준화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주요 신문의 칼럼에 등장하며 평준화 폐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 경제부처의 시각을 반영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평준화 문제점 지적으로 고교 평준화는 이제 폐지되어야 할 정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평준화 폐지의 가장 큰 논리는 교육현장에도 시장원리가 적용되어 경쟁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경쟁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데 어떤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평준화 폐지가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경쟁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짚어 보아야 한다. 세칭 일류명문출신 고등학교를 연결고리 삼아 그들끼리만 뭉쳐서 경쟁을 제한하고 폐쇄적 진입장벽을 쌓으며 일류고 출신이 아니면 경쟁무대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고등학교를 나온 인재들이 출신학교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우대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아니면 소수의 특정 명문고 출신만이 우리 사회의 요직을 독차지하며 지배하는 사회가 건강한지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인맥이나 연줄이 유난히도 강조되며 기득권의 획득과 유지에 적극 이용되는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일류고 파벌 조성은 국가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교입시가 부활되면 고등학교 입장에서는 한번 명문고는 영원한 명문고요 한번 이류고는 영원한 이류고로 고착화되는 구조가 되어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출신 고등학교가 소위 말하는 출세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신문지상의 인물 프로필에도 출신고등학교를 중요하게 소개하는 우리나라 현실속에 또 다시 소수 명문고 부활은 학연위주의 불평등사회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경쟁은 대학에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무한한 꿈을 가지고 미래가 열려있는 한창 커 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일류, 이류, 삼류로 일치감치 단정지어 구분하여 인간을 서열화, 계급화하는 것은 인간의 다양성을 봉쇄하며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어린 중학생 시절에는 고교입시에 대비한 교육보다는 폭넓은 교양 습득과 감성적 인간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준화라고 해서 경쟁은 없고 마치 획일적으로 똑같은 능력을 가진 학생을 만드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지만 해당 고등학교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수준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서로 섞여 교육을 받으면 인간적으로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며 함께 사는 사회성도 기르고 오히려 폭넓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게 해준다.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으며 창의성을 말살하여 국가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떠한 명확한 통계적 근거도 아직 없다. 지금 도전적 벤처정신으로 무장한 활력이 넘치며 다양한 사고를 가진 젊은 30, 40대는 평준화 세대다. 어디에서도 평준화 세대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메마른 지식경쟁에서 선택된 소수자들만이 잘 살아가는 사회보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서로 배워가며 어울려 사는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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