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안식찾는 명절 대이동

설날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민족이동이라는 말은 좀 과장일지도 모르나 전 국민의 반 이상이 이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교통지옥 현상이 일어나 세 시간이면 갈 거리를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고통스러운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는 차량 행렬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고향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기를 쓰고 찾아가야만 하고,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는가.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란 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가슴속에 간직된 원초적인 그리움이다. 진달래꽃, 살구꽃, 복숭아꽃, 개나리꽃이 피고, 달래, 냉이, 꽃다지 등의 각종나물을 캐는 고향의 봄은 언제나 애련(哀憐)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순정의 물결 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고향에서 안식을 취하려고 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문학작품이나 음악을 통해서 전달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고향을 떠난 허전함을 그리움으로 정화한다. 밀턴의 ‘실락원’이나 정지용의 ‘향수’, 김억의 ‘고향’,박두진의 ‘해’, 이은상의 ‘가고파’등 고향을 제재로 한 많은 시들과 노래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원형의 그리움을 찾는 작품들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고향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은 때묻지 않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순수의 세계이다.
모든 동물들과 인간이 함께 놀며, 즐기는 아름다운 세계가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이다. 뱀과 사람이 대화하고, 사자와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범죄가 없는 곳이 인간의 고향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형제를 죽인 카인의 후예는 고향을 잃어버린 떠돌이 신세의 인간사회를 만들어간 것이다. 범죄로 얼룩진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 속에서 강자가 약자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자리로 변해가고,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들의 투쟁과 테러는 대량살육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과 1,2차 세계대전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무역 빌딩 테러와 아프칸 전쟁은 인류의 범죄를 또 한번 상기시켜주는 자리가 된 것이다.
밀턴의 시 ‘실락원’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의 중심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한 원시적인 고향, 그리고 순수함과 소박함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고향을 찾는 간절한 바램이 ‘실락원’의 테마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로 표현하여 고향에 대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꿈에도 잊지 못할 곳으로 나타내고 있다. 고향은 이처럼 인간의 영원한 그리움과 회귀의 마음으로 살아 있는 향수의 자리이다.
“사슴을 따라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과 노는” 박두진의 시 ‘해’는 잃어버린 고향 에덴 동산을 찾고 싶은 순수한 세계로의 수구초심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계시는 한국인들이 즐겨 부르는‘고향의 봄’을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리운” ‘고향의 봄’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정의의 타락과 지도자들의 거짓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소박하고 순수한 에덴으로 돌아가는 노래로 불러져야만 한다. 그리하여 동구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옛 이야기가 피어나는 고향으로 되살아나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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