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지난 2월 4일 미국 듀크대학에서는 아시아태평양안보 연구소와 영일기업이 공동주최한 ‘한국학 학술회의’가 열렸다. 주제는‘한국의 정체성’, ‘남북한 정치경제’ ‘2002년 한국의 대선’ 등 3가지였으며 한미 양국 13명이 패널리스트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2002년 대선은 3김의 영향력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한국의 정치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큰 변수가 없는 한 야당의 승리가 예상되고 지역감정이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었다.
컨퍼런스를 전후해 관심을 끈 것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단정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내용이었다. 표현의 적절성과 진정한 의도를 놓고 많은 의견이 나왔다. 어떤 학자는 북한이 미사일, 핵, 생화학탄 등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 생산하여 불량국가에게 보급 확산시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원론적으로 평가했다.
다른 학자는 미국이 정말 주목하는 것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든 간에 연두교서 내용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냉전체제가 해소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시점에서 한국(한반도)이 미국의 국가이익 개념이란 잣대에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분단과 6·25전쟁이후 지금까지 한·미 동맹관계가 국가안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외교정책의 핵심이다. 반면 러시아 중국과 세계질서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에게 한국은 유럽, 중동, 아시아, 남미 등 수많은 전략목표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한국 외교의 ‘전부’였지만 한국은 미국 외교의 ‘극히 일부’였다.
‘악의 축’ 발언은 지난해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자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북한이 중동(이라크·이란)과 함께 미국 외교전략의 중요 변수로 등장함을 보여준다. 휴전선을 맞대고 여전히 긴장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북한(한반도)이 다시 한번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명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 대결이 사라진 지금 세계화 시대에 각국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놓고 경쟁하는 중이다. ‘동맹’이란 감상적 단어보다 ‘국가이익’이라는 현실적 단어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힘과 실력이 없는 외교정책은 메아리 없는 짝사랑에 불과하며 내부분열(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정부가 어떤 상황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국제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이다. 이는 경제 외교 군사적으로 주변 국이 무시할수 없는 힘을 가질때만 가능하다.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주변 국가의 침략과 개입을 막을 힘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9·11 테러사건과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내용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고,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되묻는 계기가 됐다. 올해 대선은 이런 문제를 점검하면서 국가의 방향을 어디로 끌고 갈지를 토론하는 장이 돼야 한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지 못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다 국권을 잃어버린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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