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부작용 곳곳서 분출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를 생각해보라. 얼마나 가슴벅찬 공간인가. 잘만 하면 왕자를 한손에 넣는 행운도 잡을 수 있는 곳이고, 미모만 받쳐준다면 하다못해‘中間値 男子’정도는 충분히 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곳이다. 어느 아가씬들 이 때를 놓치려고 하겠는가마는 문제는 몸에 맞는 옷이다. 옷이 날개라고 했다. 그것도 근사한 옷이 없다면 모든 꿈은 한순간에 거품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때묻은 옷, 생활고에 찌든 행색을 일거에 해소시켜준 ‘신데렐라의 보석옷과 유리구두’라면 선망의 대상인 궁전을 점령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각 정당들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경선제도는 한나라당에게도 확실히 선망했던‘신데렐라의 옷’임에 틀림없다. 이 옷만이 일거에 ‘과거의 얼룩’들을 말끔하게 빼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기쉬운 것이 하나 있다. 신데렐라의 옷은 장점과 함께 치명적인 단점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법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술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다. 요술은 일시적으로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현실까지 극복할 수는 없다. 신데렐라의 현실은 꿈이든 생시든 엄연히‘있는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몸매나 얼굴 등 바탕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어디까지나 구질구질한 구박데기 아가씨라는 현위치가 신데렐라의 현실이다.
한나라당이 무분별하게 급히 입은 경선의 옷도 지금 곳곳에서 마법이 풀리고 있는 중이다. 경선의 부작용이 대구·경북지역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천시장 후보경선은 지구당위원장과 경선에 나설 예정이었던 현 시장간의 개인적 불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경선 자체가 백지화된 상태다. 한나라당 안동시장 후보경선 역시 같은 이유로 주자 한 사람은 경선불참을 선언했고 또다른 후보는 탈당까지 결행하고 있다. 경선이 끝난 대구시 중구청 역시 선거후유증으로 행정 자체가 마비될 지경이다. 엊그제 끝난 한나라당 포항시장후보경선도 그 부정적 파장이 과연 어느 곳 어디까지 미칠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상당수의 자치단체가 한나라당 경선의 후유증으로 몸져 누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두 빌려온 옷 때문이다. 옷을 입기 전에 반드시 몸의 치수를 재는 게 상식이다. 몸에 옷을 맞추든지 아니면 옷에 몸을 맞추든지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더좋은 옷이 많으면 당연히 지금 들고 있는 옷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에 든 옷이 너무 맘에 들어 포기하기가 어려울 경우는 옷에 몸을 맞추는 수고나 고통 쯤은 마땅히 감내해야 옳다. 이것이 옷을 입을 ‘필요최소한의 자질’이요 자기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 단순하고 간단한 과정을 빼먹었다. 아니 알면서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경선이 한나라당의 치부를 한꺼번에 감출 수 있는‘신데렐라의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경선은 우리 정당들에게는‘마법의 옷’이다. 자정만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옷이다. 급조했기 때문이다. 현실에 치수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니 넘어지고 찢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함부로 따라간 게 잘못이다. 미국과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당환경과 체질이 다르고 구조 역시 우리처럼 수직적이지 않다. 미국식 경선제도를 이식하려고 했을때 그에 앞서 체질개선부터 했어야 했다. 중앙당의 한마디가 지구당에 그대로 내려꽂히는 수직구조부터 수평구조로 바꿨어야 했고, 지구당의 수직구조 역시 바꿨어야 했다. 선거인단의 선출방식도‘지금의 것’은 전혀 아니다.‘기존 조직의 끄트머리’를 조금 더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 선거인단이 한나라당의 조직생리를 그대로 물려받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당총재-지구당위원장-선거인단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수직구조가 붕괴되지 않는 한 경선은 영원히 ‘빌려온 옷’일 수밖에 없다.‘신데렐라의 옷’을 입기 전에 자신의 몸매부터 살피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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