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 구석진 곳에 중년의 남자가 누워 있다. 말이 중년이지 척박한 세태에 짓밟혀 이미 세월을 다한 사람처럼 시들어 있다. 모로 누워 있는 그의 어깨가 숨을 쉴 때마다 미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영낙 없는 시신이었다. 더구나 입고 있는 옷 차림이 연한 다갈색이라서 마치 된서리를 맞고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 같아서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모르긴 해도 그 옷은 지난 가을에 챙겨 입었을지 모른다. 그리고는 긴 겨울을 지척이며 견디다가 오늘처럼 볕살이 두터운 곳에 누워 겨울을 식히려는 것일까.
하지만 회갈색 아스팔트 위에 종이박스를 깔고 있는 모습은 결코 따뜻해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노라면 무심히 밟히는 낙엽처럼 바스락 소리를 내고는 산산히 부서질 것 같은 처연함 뿐이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나 역시 똑같은 입장이었다. 어떻게 그를 일으켜 세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봄날 눈만 돌리면 모든 생명들이 어깨를 펴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잎을 피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어찌하여 가장 존귀하다는 인간의 생명을 타고난 그가 싸늘하게 엎어져 있는 돌조각처럼 굳어진 모습일까. 차마 그냥 지나치기가 두려워 어디 아픈 곳이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며 어깨를 흔들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여전히 물먹인 천 조각처럼 흐늘거릴 뿐이다.
할 수 없이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손에 쥐어 주었다. 다행히 죽은 것 같으면서도 그것만은 용케 움켜쥐는 것이었다. 그나마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지만 그래도 무언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비록 누워 있지는 않았지만 조금 떨어진 벤치에 줄줄이 앉아있는 사람들도 똑 같은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도대체 누가 저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 아무리 잘난 지도자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저들을 거두지 못하는 한 잘난 지도자도, 행복한 나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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