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서울=연합】18일 낮 12시25분께(마닐라 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 안으로 보라색 대형 버스 한 대가 앞 뒤 경찰 호송차와 함께 미끄러져 들어왔다.
지난 14일 주중 스페인 대사관으로 쥐약을 가슴에 품은 채 뛰어 들어갔던 탈북자 25명을 태우고 아길라르 기지에서 온 차였다. 일반 승객들이 모두 대한항공 KE-622편에 탑승하고 난 뒤 출발시간인 낮 12시40분께 갑자기 한국대사관 관계자들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로 바삐 연락을 주고 받는가 싶더니 탈북자들이 필리핀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탑승구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비즈니스석 12석을 포함 376석 규모인 KE-622 보잉 777 비행기에서 이들은 비즈니스석 바로 뒤 ‘프레스티지 석’ 26석중 25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다른 객석과 달리좌석마다 TV 모니터가 설치돼있는 이곳에서 탈북자들은 연방 신기한 듯 이것저것을 만져보고 아이들 같은 경우는 남쪽 승객들을 힐끗 쳐다보는가 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TV 모니터를 만지는가 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활기차 보였지만 리 성(43·공장근로자·함북 청진 출신)씨는 북에 두고온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이번에 부인 김용희(40)씨와 막내딸 진화(7)양만 데리고 왔을 뿐 12살과 17살 먹은 오누이를 북에 두고 왔다는 것. “보고 싶어도 방법 없지 않습네까. 통일돼야 볼 수 있갔죠?” 하지만 리씨는 개인적으로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다며 남쪽에 가면 치과나 사진 기술을 살려보겠다고 계획을 털어놨다.
오후 5시10분 그토록 그리던 남쪽 땅이 보이는 순간 탈북자들의 얼굴은 온갖 감회로 가득차 있었다. 대한항공측이 특별히 마련한 케이크 한조각을 먹다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했던 유동혁씨 딸 진옥(15)양도 신기한 듯 비행기 창밖을 쳐다보며 조그맣게 소리를 질렀다. “한국이다” “이게 남조선입네까?” “저기가 서울입네까?” 경의선을 탈 경우 불과 몇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땅을 길게는 몇 년씩 돌아들어온 이들의 눈엔 어느덧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기자 앞에서 긴장한 채 말을 건네지 않던 아이들도 한국 땅을 보고난 뒤에는 뒤돌아 기자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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