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후회없이 살면 내일엔 초연

하루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시간이지만, 내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 오면 큰일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일이 오기를 고대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어떨 때는 내일을 회피하고, 어떨 때는 내일을 고대한다. 어린시절부터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한다.
거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치는 날이 다가오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대하다 못해 잠을 설친다. 소풍가기 전날에는 빨리 날이 새기를 고대하다 못해 잠을 설친다. 매일 소풍가기 전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 수는 없을까?
내일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무게와 질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은 하늘의 뜻에 따라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내일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느냐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오늘을 어떻게 보냈느냐는 결과이다. 오늘을 후회 없이 산 사람은 내일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충실히 산 사람은 내일에 대한 불안이나 원망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기대는 오늘을 산 사람 자신의 가장 공평한 자기 판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매일 소풍가기 전날처럼 설레는 맘으로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일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 오늘이 이 삶의 마지막이 되는 날에는 그 누구에게도 내일은 없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이런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되며, 그것도 어느 날이 과연 마지막 날이 될지 알 수 없다. 결국 이 삶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내일이 오리라고 믿고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매일 헛된 욕망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내일이 자신에게 확실히 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는 오늘을 살 수 있는가?
빚쟁이는 내일이 오면 빚이 늘어나고, 채권자는 내일이 오면 자본이 늘어난다. 그래서 하루는 모든 사람에게 물질적으로도 같은 시간이 아니다. 하루가 같은 점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회로 주어진다는 사실뿐이다. 사실 내일이라는 것은 역사 이래에 이 세상에 그야말로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날이다. 너무나 새로워서 아무도 그 내용을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전혀 다르게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새롭고 또 새로운 날이다.
내일은 그 누구에게도 약속되지 않은 생소한 날이다. 그러한 내일을 누구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누구는 오기를 기대하는가?
오늘의 의미는 바로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에 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의 결실이다. 내일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사람은 매일 매일 성공하는 사람이요, 내일을 두려워하며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매일 매일 실패하는 사람이다. 사실 내일은 그 존재마저 정해진 바 없다. 따라서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단지 내일을 맞이 하는 삶의 태도요 오늘의 결실일 뿐이다. 아침 식탁에 앉으며, 오늘은 적어도 내일을 기대하는 날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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