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도배된 한국사회

최근 업무차 한국에 온 중국의 조선족 학자에게서 선뜻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왜 영어로 이름을 붙인 상품이 그렇게 많습니까?”
기자는 엉겁결에 “많은 상품들을 외국으로 수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일 이후 영어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어린이들이 영어를 잘하도록 하기위해 혀 수술까지 시키는 부모들이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아연할 따름이다.
뿐만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 온통 영어 투성이다.
뉴스 시간에는 무조건 영어 이름이 붙기 마련이다. ‘뉴스’라는 성(姓)밑에 데스크, 네트워크, 투데이, 비전, 등등. ‘라인’ 이라는 이름을 즐기는 어느 방송은 심야에 내보내는 뉴스에 ‘나이트라인’이라고 붙였다.
뿐만 아니다. 대부분 각 방송 프로그램 제목도 그렇다. 영어가 아니면 사족을 못쓴다.
우리네 신문도 뒤질세라 모두 같은 태도다. 우리나라 신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거부감이 생길 정도다. 제목 자체가 영어로 가득하다. 경제면을 비즈니스, 문화면은 컬처, 연예면 역시 엔터테인먼트, 체육면을 스포츠라는 영어로 모두 표시해놓고 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아예 제호가 영어 아니면 안된다.
뿐만 아니다. 사법개혁 문제로 떠들썩 했을 때를 기억해 보면 신문마다 ‘로스쿨’이라는 말을 즉시 등장시켰다. ‘로’는 법률이고 ‘스쿨’은 학교니까 ‘로스쿨’은 바로 법률학교다.
그동안 핵확금조약(核擴禁條約)이라고 했던 것도 갑자기 영어로 ‘엔피티’라고 하는걸 보면 그것을 나무라는 사람이 잘못인지 쓰는 쪽이 잘못인지 어리둥절 해진다.
“이 세상에 자기네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1985년 엘리제궁에서 국어문제최고위원회 첫 회의를 가졌던 28명의 프랑스 작가, 정치인 그리고 예술가들은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단순한 프랑스말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뒷받침하는 가치와 문화다” 라고.
프랑스 사람들은 20여년전부터 상품의 표시나 선전에는 반드시 프랑스 말만 쓰도록 규정한 언어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이 법에 따라 ‘불어사용인 총연합회’라는 단체는 영어를 쓰는 상품이나 기업을 고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자기의 언어를 지키지 못하는 민족은 세계무대에서 자기 이름을 갖지 못한 식민지 원주민쯤으로 오해 받을지도 모른다. 영어가 가장 보편적인 국제어라고 해도 코흘리개에서부터 꼬부랑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민모두가 영어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화건 세계화건 자기 말을 지키는 민족이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사고가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라고 다그치면서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 앞에는 여지없이 전통적 가치가 무너졌다고 혀를 차고 어버이 날이면 효도를 하라고 설교하는 수수께끼의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혀 수술만 하면 영어가 술술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대구에도 미국 본토출신이라며 학원강의, 심지어 개인교습까지 하고 있는 외국인들 가운데는 엉터리 영어 강사들이 많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외국인들에게 마구잡이 영어교육을 내맡기는 기성세대들이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한심하다 못해 민족성이 걱정스러워 진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