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논에다 포도를 심어보니 벼농사보다 수입이 좋아 계속 이 농사를 지어왔는데 이제는 재미가 없습니다. 내년에 포도나무를 캐내고 다른 작목을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상민씨(57·김천시 봉산면 태화리)는 갈수록 포도가격이 불안한데 앞으로 한·칠레 협상 등으로 포도농사가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문 등으로 요즘 가슴이 답답해 온다.
이런 심정은 박씨뿐 아니라 과수농사를 하는 대부분의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과일은 농민들에게 이제 더 이상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을 비롯, 칠레와 미국,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가들은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라며 목을 조이고 있다.
지난해 전국 생산량의 39%를 차지한 포도(캠벨 10kg 상품 8월 평균)의 경우 지난 94년 2만5천원하던 것이 올해의 8월 4째주 현재는 1만4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2000년까지도 월평균 2만원 내외에서 거래돼 왔다. 그동안의 물가 인상을 고려하면 거의 반값으로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과(후지 15kg 상품 1월 평균) 역시 지난 94년 2만6천원이던 것이 지난 2000년도 역시 2만6천원대로 가격이 나아진 게 없다. 배(신고 15kg 상 1월)는 94년 3만7천원에서 7년동안 평균 3만2천원대를 유지하며 가격은 더욱 하락했다.
대부분의 과일이 이와 같은 형편이다.
이같이 과일가격이 낮아지고 있는 이유는 경작면적의 증가와 오렌지, 레몬, 파인애플, 바나나 등 외국산 농산물의 급증, 농산기술 발전으로 인한 단위면적당 생산량의 증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포도의 경우 지난 75년 재배면적이 2천여ha이던 것이 지난해는 1만1천여ha로 최고를 기록하며 5.5배나 늘었다. 이에 비해 생산량은 75년 1만6천t에서 지난해 17만7천t으로 11배나 증가했다.
복숭아는 지난 75년 재배면적이 2천700여ha였으나 지난해는 7천여ha로 사상최고를 기록하며 2.6배로 늘었다. 이에 비해 생산량은 1만7천여t에서 7만4천여t으로 4.4배로 늘었다.
이런 실정에서 도내 과수농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보다 농산물의 수입개방이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결과에 따라 도내 과수농가들은 거의 설 땅을 잃게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농협이 지난 2000년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칠레의 국산 농산물이 국내에서 경쟁할 경우 국산이 포도 6.3배, 사과 1.6배, 배 2.5배, 자두 1.7배, 복숭아 1.1배 등 칠레산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포도 23.6%, 사과 11%, 배 11%, 복숭아 8%, 자두 17%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칠레의 농산물들이 모두 지역의 주력 과일과 겹치고 있다. 지난 해 경북도의 사과는 전국 점유율이 60%, 배 14%, 복숭아 45%, 포도 39%, 자두 77%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불안정한 기후도 지역 과수농에 위협을 가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매년 태풍, 서리, 호우 등이 농가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봉화 물야면의 경우 연속 3년째 우박피해를 입었다. 도내 북부지방은 지난해 3월에는 꽃샘추위로 꽃눈이 얼었으며 5월에는 계속된 가뭄으로 열매가 50~60% 밖에 열리지 않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00년에는 과일이 한창 살을 부풀리는 때인 9월 중순에 태풍 ‘사오마이’가 급습, 도내 과수농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처럼 어딜 둘러봐도 빛을 찾을 수 없다는 게 과수농가들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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