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선(경주초등학교 교사)

봄비가 다녀가도 등꽃 향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에겐가 그리움으로 다가서고 싶은 탓이리라. 누구나 꽃 아닌 사람이 없고, 향기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유독 봄이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봄 내내 가슴으로 들어와 산나물 향기로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고, 모란꽃처럼 함빡 웃음을 머금었다 사라지는 얼굴도 있다.

바닥을 기어가는 등나무도 지주를 세워주면 그늘을 드리우고 향기를 드리우는 쉼터가 된다. 아이들 속에도 등나무처럼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체적인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도 있으나, 그 중에는 마음이 자유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지주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도 있다.

등나무가 등꽃 향기를 피울 수 있도록 지주를 세워주듯이, 자식을 위해 기꺼이 지주가 되어주고 싶어 하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늘 환하게 웃고 있어 가슴에 드리운 그늘의 깊이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이보다 하루를 더 살다가는 게 소원이라던 그 어머니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겉으론 아무 이상이 없는데, 허공을 향해 더듬이를 내미는 등나무처럼 아이는 내내 허방을 딛는다.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수만 번의 말을 되풀이하고, 수만번 반복된 연습 뒤에야 겨우 사람들 속에 길을 내게 된다. 길이 보이는 듯하다가도 형상기억합금이 된 것처럼 아이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두 손 속에 우주를 담고 있다는 그 아이는 손가락을 연신 움직이며 혼자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도무지 또래 속으로 눈길을 주지 않을 뿐더러, 무리 속에 섞어 놓아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아이는 꼭 다른 별에서 온 아이처럼 행동한다. 한 가지에 집착하면 한두 달은 그 증세가 계속된다. 자동차 번호판 외우기에서부터 남의 집 주소 외우기까지 아이의 기억력은 놀랍도록 뛰어나다. 그러나 꼭 한 가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다.

마치 앵무새처럼 상대방의 말을 되풀이하거나 훈련받은 것들을 밖으로 내보낼 뿐, 아이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통과시켜 버린다. 그리곤 저만의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물론 그 상대는 저보다 한참 위인 어른이나 누나들이다.

전근 오기 전에 그 아이는 욕을 익혀 인사 대신 그 욕을 써 먹어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또래나 상급생들이 그 아이를 향해 뱉은 말들일 것이다. 필요한 것들은 다 여과시켜 버리고 흘려버려야 할 것들을 그 아이는 용케 주워 담아, 놀이를 하듯 열중하고 있었다.

등나무 아래 서 있다보니 불현듯 그 아이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잘 적응하고 있을까? 담임께 참고로 귀띔은 해 두었지만 당황하지는 않고 있을까? 나 또한 그 아이를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낼 때쯤 겨우 읽을 수 있었으니까. 때론 안타깝고, 때론 수업 분위기를 깨트려 놓는 통에 은근히 짜증도 나게 하던 그 아이.

아이가 등꽃처럼 제 발등을 비출 수 있게 될 때까지, 어머니는 아이의 그늘에서 기꺼이 그의 지주가 되어주려 할 것이다. 그 헌신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또한 안타깝다. 레몬 사탕을 즐겨 먹고, 선생님도 한 개 달라고 하면 입 속의 것을 내어주던 그 아이. 그리고 줄곧 내 볼을 만지려 하고 큼큼 냄새를 맡던 그 아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