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는 위험하다. 물론 활자의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활자화될 때 그것은 상식이 될 우려가 있고 객관화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신문일수록 그러하고 공신력이 높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동물은 크게 야생과 가축으로 나뉜다고 할 것이다. 야생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자유로움과 신비감 등일 것이다. 그에 반하여 가축이라는 것은 인간과 공생하며 고기와 기타 부산물 및 노동력 등을 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힘들이지 않고 먹이를 얻어 생존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 싶다.
그런데 귀사의 사설에서 포항시장 및 시민단체 등 200여명이 내연산 수목원 일원에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이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며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후렴까지 덧붙였다. 참으로 위험하고 안타까운 상식이 아닐 수 없다. 혹독한 겨울에 먹이가 없어서 인간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생존한 야생동물은 먹이가 풍부한 봄·여름 산천의 진수성찬을 즐길 자격이 없는 야생동물이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에 주는 먹이로 길들여진다면 먹이를 주지 않을 때 어쩌란 말인가. 언제까지 인간이 그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존하는 야생동물이라면 가축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느 해 일본에서는 철새들이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서 텃새로 눌러 앉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당국은 뒤늦게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야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깨닫고 철저하게 먹이 주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어느 국립공원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방식이다. 야생 곰에게 먹이를 주게되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한 예로 철원일대에서 해마다 이맘때면 천연기념물인 검은 독수리 먹이주기가 한창인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만들어 산천에 그 비싼 닭고기를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모 방송매체 또한 귀사의 시각처럼 아름다운 행위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가. 독수리는 이제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냥할 줄도 모르며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독수리가 철원으로 몰리게 되었고 닭고기를 물고 날아가다가 까치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황급히 달아나는 한 마리의 검고 커다란, 날아 다니는 오골계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해 철원에서 검은독수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송에서는 농약 등의 피해가 아닌가 의심하고 조사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분명 굶어 죽은 것이다. 주는 먹이는 일정한데 해마다 늘어난 독수리의 숫자가 문제가 된 것이 분명한 것이다.
사냥을 못해서 죽고 굶주려 죽고 약해서 죽고 적응하지 못해서 죽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로 죽고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러한 야생동물은 죽어야 한다. 그것이 야생의 법칙이고 야생다워지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겨울에 무슨 사냥감이 있냐고 하겠지만 북극의 여우도 언 땅을 파서 풀이라도 캐먹고 살 듯이 사는 놈은 사는 것이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정상은 소수인 것이다. 그것도 생명력이 뛰어난 강인한 소수인 것이다. 무늬만 야생인 것은 벌판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수행자가 세속을 그리워하고 세속의 삶의 방식에 길들여진다면 그는0 山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는 무늬만 수행자인 生活人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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