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깊은 곳에서 바위이고 싶어라 - 저자/ 이영순 문학세계 출판부

‘저마다 구실있어 만들어진/세상 속 수만가지 그릇들…/근본은 밥과 찬 그릇이듯/제 격이 매겨져 그 꼴 따라/제 구실 담으면 품격이 아리땁다/빗나간 용도, 억지 사용은/있어야 할 곳 제자리 못하고/고집불통 자리 지킴이/ 담은 것 어설프고 볼품도 없다/이미/ 불가마에서 구워진 진흙/ 분수에 따른 제 숙명의 몫이다/그 그릇은 그 그릇일 뿐이다.(詩 그릇 전문)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로 34년, 총 5천611시간을 하늘에 떠 있었던 조인(鳥人)이영순시인이 첫 시집 ‘하늘 깊은 곳에 바위이고 싶어라’를 펴냈다(문학세계 출판부).
그는 육안으로 내다 본 하늘의 높이를 삶의 깊이에 안아들이면서 정감어린 시로 풀어내고 있다. 또 그의 시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비행하며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는 조종법을 운용, 독자들로 하여금 하늘의 신비에 대한 박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제 1부 ‘누룩’, 제 2부 ‘겨울나무 아래서’등 5부로 나누어진 그의 시집에는 하늘에 멈춰선 시적 사유의 편린 100편을 실었다.
이 시집이 독특한 이유는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전투 조종사, 시의 소재가 된 하늘의 모습,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전투조종사 3명을 키워낸 비행교수, 그리고 서정이 담겨 있는 시 때문이다.
지금까지 하늘은 아득히 쳐다만 보는, 초월성과 영원성을 읊어내는 신비의 세계로 수용해 왔다.
그러나 이 시인의 시는 하늘을 직접 날아오른 체험성과 사실성을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눈짓으로 발견해낸 창의적인 시세계라고 해설을 맡은 박곤걸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가 공군사관학교 정년을 앞두고 출간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하늘을 향한 일관된 의식으로 온 몸으로 쓴 그의 시는 조인(鳥人)으로서의 궤적이 농축된 사실성의 작품세계, 일상과 전통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먼-동편 넘어 여명이/검붉은 바다 위 먹구름 가르며/눈부신 햇살, 하늘 문을 연다/ 동해가 비좁은 듯/가당찮은 체구, 기상하는/일명 ‘동해고래’란 사나이./ 청운의 꿈 창공에 흘린/날지못한 아픔 저린 새/ 빨간 마후라의 꿈을 우정에 태워/언제나 조인, 편대비행중이라오/ 더 넓고 깊은 바다로의 꿈/ 장대한 해일, 갯바위만 부딪치려니/시련과 아픔, 간단없는 파도에 묻혀/포효는 가히 넓은 가슴 미어진다/’동해고래’여!’ 넓디넓은 바다에 휘~휘~/유영하는 고래의 웅지/미래는 도래하리요(‘동해고래-친우 박상택회장을 위하여’전문)
비행의 꿈을 접어야 했던 친구를 위해 쓴 시가 보여주듯 이영순시인의 가슴은 따뜻하다. 그래서 그의 시를 노래로 읊으면 즐거운 서정이 되지만 그의 시를 철학으로 읽으면 무거운 지성이 된다.
그만큼 사실과 진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의 지도 위에 자그마한 획 하나를 긋고있는 이시인은 앞으로 우리 시단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해 나가는 몫을 감당할 것”이란 해설을 눈여겨 볼만 하다.
이영순시인은 왜관에서 태어나 공군사관학교, 국방대학원을 졸업하고 1970년 여의도에서 비행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시인은 현재 한국문협 칠곡지부 회원,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 편집위원, 세계 시낭송클럽 상임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수필집으로’하늘이 받아준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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