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혼 물씬 ‘계림의 땅’이 부른다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 부산과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다.
지도에서 보면 대마도는 전남~제주도간의 거리의 반밖에 되지 않고 부산~대마도(49.5km)는 더욱이 일본의 본토인 후쿠오카~대마도(147km) 보다는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그곳이 지금은 일본의 땅이다.
그러나 과거 대마도는 분명 우리 땅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조의 기록에 의하면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땅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주(州)가 옛날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1436년 대마도주인 소우 사다모리(宗貞盛)가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대마도 구제를 위해 대마도를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려 경상도로 예속시키면서 그를 태수(太守)로 봉한 사실이 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아들 소우 시게요시(宗成職)에게는 조선 관직인 종일품판중추원사(從一品判中樞院使) 겸 대마주도제사(對馬州都制使)로 임명한 사실이 있으며, 이 외에도 대마도의 유력자들에게 조선의 관직인 만호(萬戶)직을 주었으니 예로부터 대마도를 우리 나라의 한 고을로 취급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못난 우리 후손들은 대마도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적이 있으나 이후 어느 대통령도 이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오히려 지금 일본이 독도까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데도 더 이상 언급도 하지않고 오히려 애써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마도의 곳곳에는 신라불이나 고려불, 조선의 범종이 모셔져 있으며 박제상, 최익현, 덕혜옹주, 고려문, 고려산, 한반도에서 건너간 토기 불상 경전 청자 등 쓰라린 민족사의 현장과 선조의 숨결이 배어 있다.
지금 부산~대마도 뱃길은 한국인들로 붐빈다. 관광에다 우리의 역사 탐방, 등산 낚시 레저 행렬 등 목적도 각양각색으로 천혜의 자연 환경과 맑은 공기가 발길을 끌어당긴다.
해마다 8월이면 ‘쓰시마 아리랑축제’로 섬 전체가 북적이고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그 화려했던 행렬이 지금의 ‘아리랑 축제’로 해마다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 축제’는 매년 8월 첫째 토, 일요일에 개최되는 대마도 최대의 축제. 조선시대 일본으로 파견됐던 문화사절단인 통신사의 행렬 재현을 정점으로 노젓기 대회,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 정권이 자국땅으로 편입한 대마도는 1950년대 초반까지 주민들이 부산으로 건너와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볼수있는 가까운 도시였다. 이후 오랫동안 부산-대마도 뱃길이 끊겼으나 1999년 대아고속해운의 정기여객선이 운항되면서 대한해협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올해 여름에는 한국의 혼이 숨쉬는 대마도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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