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언덕을 살리자

포항지역은 지난 세월동안 근대화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명사십리로 유명한 그림 같은 해안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잃었고 그에 따른 수려한 솔숲과 희귀식물 등이 사라지는 수난을 겪었지만 아직도 근대화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경제개발의 포크레인 소리가 뭇 생명들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개발행위에 맞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천성산 도룡뇽 살리기 운동과 충남 태안반도 모래언덕(砂丘) 살리기 운동 등 환경 살리기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자체들은 ‘함평 나비축제’, 무주 ‘반딧불이 축제’등 친환경적인 축제로 환경을 살리면서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이용한 경제 살리기에 나서 모범 모델이 되고 있다.
포항시도 소비 지향적인 낭비성 축제에서 탈피해 친환경 축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전문가들에 따르면 포항은 어느 지역보다도 환경을 이용한 경제 살리기에 적합한 도시다.
그러나 아직은 개발논리가 우세해 환경론자들의 목소리가 개발주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환경파괴가 가속화되고 특히 환경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가 환경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제 시선을 자연으로 돌려야 할 때이다. 그동안 무관심하고 천대했던 자연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빨리 자각해야 한다.
매년 5월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2리 해변 모래언덕에 가면 홍자색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해풍을 맞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6월에는 연분홍 갯메꽃, 7월에는 보라색 순비기꽃, 9~10월에는 청초한 해국이 함초롬히 피어나고 있어 마치 희귀꽃들이 봄과 여름, 가을 동안 차례로 열병식을 거행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해당화는 홍자색 꽃이 오랫동안 피고 붉은 열매도 관상가치가 높다. 광택이 나며 주름잡힌 잎도 좋고 덤불을 이루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해당화에 이어 6월에 피는 겟메꽃은 연분홍 나팔모양으로 피어 보는 사람들의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모래사장에 줄기를 쭉쭉 뻗으며 보라색 꽃을 7월에 피우는 순비기꽃은 해안 사구(砂丘)를 보호하는 귀중한 식물이고 잎과 꽃, 줄기에서 향기가 나는 희귀식물이기도 하다. 특히 순비기꽃 향기는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지식인 노동자들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뇌의 피로를 씻어 준다는 뜻의 세뇌(洗腦)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바쁜 업무로 지친 사람들이나 수험생 등 스트레스와 피로에 쌓인 사람들은 7월에 화진 모래언덕을 찾아와 순비기꽃 향기를 맡으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된다고 한다. 이 모래언덕에는 봄 여름 가을에는 희귀한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이들 꽃들이 해풍에 견디며 꿋꿋하게 겨울나기를 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해당화의 최남단 자생 군락지인 화진 모래언덕은 해당화 뿐만 아니라 각종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대진과 화진해수욕장 400여m 모래사장을 끼고 1만여평에 걸쳐 형성돼 있는 화진 해당화 군락지 모래언덕은 지역민들이 보호해야 할 천연기념물이다.
화진 모래언덕에 자생하고 있는 희귀식물은 가막사리, 개망초, 갯그령, 갯메꽃, 갯방풍, 갯쇠보리, 통보리사초, 갯완두, 괭이밥, 꼭두서니, 닭의장풀, 돈나무, 돌가시나무, 둥근바위솔, 멍석딸기, 명아주, 사상자, 선개불알풀, 쇠뜨기, 수영, 순비기, 쑥, 왕잔디, 인동, 자주개자리, 좀보리사초, 참골무꽃, 참새귀리, 참억새, 천문동, 해당화, 해란초, 갯잔디, 땅채송화, 벌노랑이, 창질경이 등 100여가지에 이르고 있다.
김종원·남화경(계명대 생물학과 보전생태학연구실) 교수가 지난 96년에 발표한 ‘해당화의 최남단 자생군락지’ 논문에 따르면 화진2리 해당화 군락지는 경북 영해에서 경남 울산만까지 형성된 제3기 층을 기반으로 넓은 해안사구를 형성하는 지역에 포함돼 있다.
이 군락지에는 해안사구에서 전형적으로 출현하는 순비기나무, 갯그령, 갯쇠보리, 터주식물인 자주개자리, 명아주, 가막사리들이 자생하고 있다. 또 왕잔디와 갯메꽃, 갯완두, 참골무꽃, 갯방풍, 해란초, 돌가시나무, 천문동 등의 해안사구식생의 주요 구성종들이 생육하고 있어 이 지역은 우리나라 동해안을 대표하는 사구식생의 전형적 자연경관을 보전하고 있는 중요한 생태입지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이 군락지는 △현지내 보전의 식물자원적 가치 △해안사구의 경관자원적 가치 △사구 생태계에 대한 학술적 가치 등으로 보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군락지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에 놓여 있어 포항시와 환경당국이 나서서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모래언덕 군락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지역민들이 희귀꽃과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보존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의 자연학습관찰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해안사구식물관찰원’ 조성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 일대 화진해수욕장이 올해부터 군부대 통제에서 벗어나 일반인에게 개방돼 각종 쓰레기가 희귀식물 위에 버려지고 건축물 신축으로 인한 건축쓰레기가 해당화 군락지에 방치돼 군락지 환경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또 해당화가 당뇨병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당화를 뿌리 채 뽑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단속을 통한 보호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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