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열며-김학(수필가)

호호부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서울 토박이다. 그녀는 성격이 쾌활하고 명랑하여 구김살이 없다. 때와 곳에 구애받지 않고 시원스레 웃음을 토한다. 그러기에 그녀가 있는 곳은 항상 밝은 분위기에 젖는다.
호호부인이 남편인 J시를 만난 것은 꿈 많던 여고시절. 가정교사와 제자로 만난 인연이 부부관계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이 부부가 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았다고 한다.
J씨가 전라도 시골 출신이었고, 조실부모한 혈혈단신의 고학생이었으며, 그녀와 나이 차이가 많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모의 극렬한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한 집념의 여인이었다.
J씨는 결혼 후 백모(伯母)를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살았다. 91세에 세상을 뜨신 백모는 호호부인에게 깐깐한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고 한다. 신혼 초 시골에 잠시 머물 때, 서울색시라 불리는 호호부인은 서툰 농사일에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모내기를 하다가 거머리에 물려 질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보리베기 나락베기를 하다가 손가락을 베어 아픔을 겪은 게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비틀거리며 지게도 지어보았고, 물동이를 이고 가다 옷을 적시기도 했단다. 어느 것이 채소나 곡식이고, 어느 것이 잡초인지 몰라서 애써 일한 뒤 야단을 맞은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익숙치 못한 농촌생활에 연일 고달픔을 겪어야 하는 호호부인은 어느 날 밤 남편이 몰래 사다준 풀빵을 먹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추억이 새롭다고 했다.
호호부인은 내조의 솜씨 또한 빼어난 편이다. 세월이 흘러 남편 J씨가 기관장이 되자 부속실 아가씨나 운전기사 그리고 휘하 간부들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정성어린 선물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이따금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간장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호호부인의 내조는 J씨에겐 큰 힘이 되기 마련이다. J씨는 천하가 다 아는 두주불사형의 애주가(愛酒家)다. 그러니 호호부인은 술상을 차리는데 도가 텄다. 남편이 술에 취해서 귀가해도 호호호요, 주객들이 밤늦게 찾아가 술을 달라고 해도 호호호다.
“아무리 내가 송곳으로 찔러도 아내가 물로 받아버리니 싸움이 되질 않아!”
언젠가 J씨가 들려 준 그 이야기가 오늘따라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이야기는 호호부인에게 딱 어울리는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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