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노근리 사건’이 포항에서도 있었다. 1950년 8월 1일 오후 2시경 현 환여동 해변 절벽아래에 숨어 있던 피난민들이 미 해군의 무차별 함포사격을 당했다. 이 곳은 속칭 송골계곡으로 앞은 바다이고 뒷쪽은 10m가량의 절벽으로 돼 있어 피난하기 적당한 지역조건이다.
‘포항 함포사격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관계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중 정찰기 한대가 저공비행을 한 후 곧 포격이 시작됐다” 고 했다.
당시 여남동 연안에 미 군함 3척이 나타났고 정찰기가 지나간 후 30~40분간 송골계곡에 대한 집중포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이 사격으로 1백명 이상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송골계곡에는 그 때 1천여명이 모여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죽천리 쪽으로 달아난 사람은 살았고,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총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포격이 멈춘후 백사장은 피로 온통 물들였고, 아수라장속에서 가족의 시신을 찾았다고 한다.
이 학살의 현장에는 포항지역 시민들도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 50년간 참아왔다. 민족적·국가적 불행인 전쟁이어서 개인적 불행은 덮어둔 것이다.
그러나 노근리사건이 美 언론에 의해 공개되고, 유가족들이 국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기했고, 영국 BBC방송이 현지취재를 통해‘모두 죽여라’ 란 제목으로 다큐멘트리를 제작, 방영하면서 미군에 의한 한국인 학살사건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전쟁중이지만 무고한 양민을 무차별 살륙한 것까지 정당화되거나 덮어둘 수는 없다. 무장도 하지 않은 피난민이었음을 미 정찰기가 몰랐을 리도 없으니 ‘인민군으로 오인’해서 포격을 퍼부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설득력이 없다.
포항 함포사격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피해자 신고를 받고 있다. 이런 위원회가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피해자들이 많은 때문인지, 혹은 피해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 탓인지, 지금까지의 피해신고는 사망 38명, 부상 2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다.
피해자들이 적극 나서야 하고, 국회와 정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며, 미 국무부도 노근리사건 처럼 ‘여남동학살사건 조사위원회’를 한·미합동으로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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