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시대 임명직 도지사 시장 군수들은 판공비를 기밀비란 이름으로 자유로이 사용했었다. 그러나 자치시대에 들어오면서 판공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납세자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주민의 세금을 단체장이라도 마음대로 쓰서는 안되며, 투명하게 공개해서 예산낭비적 요소를 없애야 한다”라고 생각하게됐다.
전국에 16개 광역자치단체가 있고, 232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있는데, 그중 40여곳은 자발적으로 판공비를 공개하고 있다. 그중에는 매일 공개하는 단체장이 10여명, 月別로 공개하는 경우도 있고, 분기별로 공개하는 곳이 30여곳이 된다.
공개방법도 돈쓴 날짜, 용도, 금액, 카드 혹은 현금 사용 여부, 수혜자 인원수 등을 상세히 밝힌 경우도 있고, 수혜자의 개인신상과 접대장소까지 공개한 경우도 있다. 박맹우 울산시장, 김혁규 경남도지사, 채현병 충남 홍성군수 이상범 울산 북구청장 등이 ‘매일 상세히’ 판공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자치단체장들이다.
자치시대 10년을 넘어서면서도 아직 구시대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치단체장들이 대부분이고, 시민단체들로부터 공개하라는 요구를 강력히 받으면서도 이런 저런 설득력 없는 핑개를 대며 공개를 미루거나, 형식적이고 개괄적인 공개만 하겠다고 버티는 자치단체들이 많다.
지금 전국 40여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판공비 공개 전국네트워크’를 구성했고, “판공비의 왜곡된 집행과 국민세금의 낭비를 막고, 선심성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개돼야 하며, 납세자인 국민은 단체장의 판공비 사용내역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같은 공개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민단체들은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공개에 대한 행정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법과 고법은 “공개함이 타당하다” 며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타당성 있음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단체장들은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해놓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자세히 공개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自明하다. 떳떳하지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며, 판공비는 ‘기밀비’라는 의식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시대적 의식은 혈세낭비로 이어진다.
지방자치시대에서의 최대 악덕은 ‘국민의 세금을 공무원이 마음대로 쓰는 일’이다. 그것은 공무원이 ‘지배자’로 ‘군림’던 시대의 관행이다. 행정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서 지배자로 군림할 수 없는 것이 자치시대임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판공비 공개 조례’와 ‘납세자 소송제도’ 가 도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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