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다시 태어난다면…?”하는 질문들을 한다. 그 중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은가?”하는 물음에 대해 나의 대답은 언제나 단호하게 “No”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이것 역시 “No”이다. 어차피 남성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이상 그 삶의 모습에 대해 알리 없고, 남성 역시 분명 그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성의 삶에 대한 대답만큼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한 외침이다. 그러면서도 “No”라는 대답 뒤에 어쩔 수 없이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망설임 없는 대답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리 당당할 것도 유쾌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살아가기 힘든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 중에 가장 훌륭하게 생각되는 것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자원으로서의 국민을 육성하고 있다는 식의 거창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아이는 내게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시금석이고 삶의 기쁨과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고맙고도 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아가 많이 편해진 지금의 한가한 이야기이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그리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객관적으로는 상당히 선택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람을 느끼는 직장을 가지고 있고 집안에서나 직장에서나 여성이라고 크게 차별을 받아 본 경험도 없다. 자신의 일에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만 아이를 낳은 후 상황은 완전히 돌변했다. 육아는 육아대로, 직장 일은 직장 일대로 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가 왜 이런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가 억울하기도 했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나로 하여금 만족스러운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모순된 구조인데도 말이다.
20세기 초반 여성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참정권을 얻어낸 이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표면적으로 여성은 남성과 거의 비슷한 지위를 획득한 듯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과 비교해 보아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모든 사회에서 가장 변화가 늦은 것이 가정이나 가족과 같은 말초단위이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지위를 얻어도, 사회에의 기여도가 같더라도 어머니가 되는 순간 여성은 직장이나 가정 중 어느 한쪽, 아니면 양쪽 모두에서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느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모성애’란 족쇄로 어머니 쪽에 일방적인 육아책임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자녀를 가진 여성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다시피한 사회구조 속에서 직장을 가진 어머니들의 사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정한 여성의 바람 살펴야
정부는 지금까지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던 보육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거나 양육 보조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호주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에 기대를 걸어보긴 하지만 출산 장려 정책에 있어서는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우선 여성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얼마간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여성들의 꽁꽁 닫힌 마음이 풀어질지는 의문이다.
내게 만약 “여성으로 태어난다면?”하는 질문을 다시 한다면, “아이는 여럿 낳고, 몇 년간은 내 손으로 아이를 직접 돌보고 싶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던 대사이다.
허 영 은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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