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새벽 목욕을 갔을 때다. 허리 굽은 노인이 욕실로 들어왔다. 두리번두리번 하더니 한 손으로 욕실 바닥에 퀭~ 코를 푼다. 물론 바닥을 씻어내리지도 않았고 송구스러운 표정도 없었다. 그리고는 곧장 세숫대야로 물을 퍼서 끼얹고는 아랫도리는 아예 씻지도 않고 탕 안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반신욕을 즐기면서 맑은 물 속을 들여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나의 뇌 속이 금방 먹구름으로 가득 차버렸던 기억이다.
곧장 탕에서 나와 때를 밀다가 문득 옆자리를 보았다. 한 중년 사내가 수도꼭지를 틀어서 세숫대야에 물이 철철 넘쳐흐르게 한 채 10분 가량 수염을 깎고 있는 것이다. 버럭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 서둘러 탈의실로 빠져 나와버렸다. 청장년 남정네들이 곧잘 입식 샤워기 앞에 서서 비누칠을 하고 양치질을 하는데, 양치질 할 동안 돌아서서 등뒤로 하염없이 물을 뿌리게 털어놓는 일이 부지기수다. 한번은 중년의 한 사내가 샤워기를 틀어 놓은 채 그 아래 바닥에 퍼질고 앉아서 세월없이 때를 밀고 있는 정경 때문에 울화가 치밀어서 목욕을 하다 말고 나와버린 적도 있다. 남들이 모두가 예사로 보는데 나 혼자서 나무라고 따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절 미우면 중이 떠나듯’ 피해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양심이 마비된 인간의 본색이 양(羊)같을 리는 만무할 터, 무뢰한의 봉변이라도 당할까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최근들어 절수대책으로 고심 끝에 입식 샤워기에는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다가 몇 초 후에 자동으로 잠금되는 시설을 하고 좌식 샤워기 손잡이에도 버튼 달린 것을 의무적으로 교체하게 하였다. 실효성은 어떨런지 몰라도 땅 속에는 물이 무진장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이제사 겨우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나는 노랭이가 아니고 구두쇠다’ 라고 외치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77살의 자린고비 영감 박봉태씨는 네 컵의 더운물로 머리를 감고 온 몸에 비누칠 하여도 가볍게 목욕(?)을 끝내는데 반해 이런 낭비족들은 족히 한 드럼은 더 써버리는 것 같다. 물과 원수진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네들은 언젠가는 물의 보복을 받게 될 터인데, 알고 보면 참으로 불쌍한 중생들이다.
목욕탕에서만 살펴보아도 아직 우리의 민도가 바닥세임을 절감한다.
등뒤로 입식(立式) 샤워기를 시종 틀어놓은 채 비누거품으로 사타구니를 벅벅 문지르는 모습은 실로 구역질나는 저속한 정경이다. 탕 안에서 얼굴의 때를 박박 미는 사람, 사우나 실에서 흐르는 땀으로 가슴팍을 벅벅 문지르는 사람, 반가운 사람 만났다고 남의 이목같은 것은 오불관언, 소리 소리 지르며 담소를 즐기는 사람, 운동한답시고 덜렁이며 팔짝팔짝 뜀뛰기를 하는 사람, 수건하나 덮은 채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고는 사람, 이 모두가 수치를 모르는 공중도덕 상실증 환자다.
부끄럼을 잘 타는 어린이가 나잇살 먹으면 대담해지고 성공하는 확률도 높아짐을 본다. 부끄러움이란 것은 자존심에서 나온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수치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철면피가 되어 가는 것이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예(禮)를 지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부끄럽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일어나는 도전정신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가 이웃보다 못사는 것이 부끄럽고, 동창생 보다 출세하지 못함이 부끄럽기에 남모르게 더 일하고 더 고생하다보니 마침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무례한 사람 보다 예를 갖춘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지키면 그만큼 부끄러움이 덜어지게 되어 있음이다.
이제 나라에서는 국민들을 제대로 이끌어주는 연구를 서둘러야 할 때다.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 삼 우 - 기청산 식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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