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의 조기 종결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이는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분류하고, 이라크 다음으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북경회담 성사가 미국의 가공할만한 군사력에 북한이 영향을 받지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그간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위치에서 체제유지와 극도로 어려워진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외교적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도 이를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고 체제를 보장 받고자 한다. 이것이 성사돼야 일본과 관계개선이 가능하고,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방국과의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북한은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민족주의적 입장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실리를 추구하고 있음은 물론 대미정책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다. 김대중정부의 국민적 합의없는 일방적 대북평화정책이 정치적 쟁점이 되어 국민의 여론을 분열시켜 총체적 국력을 약화시키고 있고, 동맹국인 미국의 대북정책과 조율하지 못하고 균열양상을 보임으로써 국가이익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안보에 허점을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승리는 북한의 ‘벼랑끝전술’의 효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주장을 받아 들여 3자회담에 응하게 됐다.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북·중·미 3자회담에 당사자인 한국이 배제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음에 국내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이번 3자회담은 다자회담의 예비회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궁색한 해명을 함과 동시에 그간 정부가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에 요구한 바 있는 북미대화가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분위기를 십분 이용하여 3자회담에서 중국은 중개자적 입장일 뿐 북미회담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북핵 위기의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을 본 회담에 참석시키는 다자회담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여간 북경회담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의 분위기로는 그리 순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서 북한은 그간 남한에서 요구한 남북장관회담에 대한 반응은 일언반구도 없다가 북경회담을 앞두고 남북장관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해 왔다. 물론, 한국정부가 당연히 응하리라는 계산에서 제의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북경회담을 앞두고 유리한 조건을 만들겠다는 속셈이 숨어있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한국정부에 식량과 비료 지원을 요구했다. 이는 그들의 요구가 당연히 성사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으며, 남북관계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과시,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고 북경회담에서 또 하나 유리한 점을 추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간 한국정부가 보여준 나약한 약점을 북한이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후세인의 철권통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똑똑히 보았다. 결국 총체적 힘이 약한 쪽이 패하고 만다는 진리를 또 한번 보게 된 것이다. 막강하게만 보였던 소련이 20세기말 스스로 무너졌던 것보다 더욱 확실히 보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가 한반도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북한의 봉 노릇이나 하고, 국제사회에서 들러리나 서는 가련한 신세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과 확신을 갖고 행하면 반드시 성사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 봉 화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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