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매일 아침 지인에게서 성구 메일을 받는다. 지금껏 습관처럼 지나치고 말았는데 오늘은 그 평화라는 낱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자꾸만 곰씹어진다. 누가 이 땅에서 우리에게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에게 평화를 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방미 외교에 대한 시비가 분분하다. 저자세 외교였다는 측은 ‘한반도 위협 증가시 추가조치 필요성 공감’ 등의 내용에 합의함으로써 북핵 문제에 있어서 부시에게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17일 귀국보고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신뢰 구축을 가장 중요한 방미 성과로 꼽았다.
많은 지지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노 대통령이 고심 끝에 한미공조 전략을 선택한 것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본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사항은 한반도의 전쟁억제 즉 평화유지 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미 신뢰가 붕괴되자 미국은 한국정부를 배제한 채 영변 핵시설 폭격을 시행하려 했던 것이다.
이 땅에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이라크 국민들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쟁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크나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가 인류사에 남겨놓은 가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의 제2대 칼리프인 만수르가 티그리스강 서안에 이슬람제국의 새 수도를 건설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도시” 라고 이름 붙인 곳이다. 더구나 이라크 박물관은 고고학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으로 여기를 방문하기만 해도 고대 오리엔트에서 이슬람시대까지의 역사를 아우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약탈과 파괴로 상처만 남았다.
또 이라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름다운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 이다. 어질고 착한 셰헤라자데, 그녀를 사랑한 샤푸리 야르왕, 신드바드, 알라딘, 요술램프와 하늘을 나는 담요. 이 이야기들은 그 지역인의 삶이며,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으로 자리하고 있는 꿈의 세상이다.
더욱이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데려다가 살게 한 에덴동산도 그곳이었다는 이야기다.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보기 좋고, 맛있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던 낙원도 바로 그곳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나고,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을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만이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키고 말았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장애아가 많이 태어나는 곳이 되어 버렸다. 걸프전 때 쏟아 부었던 각종 무기와 열화 우라늄탄의 결과를 후손들이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도, 미국의 대북한 공격도 가로막고 나서지 못하는 게 솔직한 우리의 처지이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하여 주체적으로 행사할 마땅한 카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시점에 정말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문제는 굴욕이니, 저자세니, 실리외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양국의 대통령이 맺은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인가를 무서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리라.
김 일 광<포항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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