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와 장난감으로 아이들의 기본가치관이 언제 형성되느냐를 실험한 제롬 케건 박사는 생후 14개월이면 어머니가 아기 젖을 주듯 달랠 줄 아는 양심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치관의 형성시기에 관한 학설에는 ‘스폰지 이론’이 있다. 바다에 사는 해면(스폰지)은 물의 청탁을 불문하고 수분을 양껏 빨아들이지만 그 후에는 흡수하지 않는다. 사람도 12세까지가 이런 흡수기며 이 때를 놓치면 자녀들의 가치교육의 초석 놓기는 어렵게 된다. 로즈여사의 자서전 ‘내 아들 케네디’에는 가치교육의 진수가 있다. 직접 아이를 기르고 교회를 존중하며 손수 요리를 만들었다는 ‘3K 교육’과 7남매를 가정에서 분만했고 아이의 생력사를 기록한 카드식 육아법을 유행시켰다. 규율과 조기훈련이 엄격하며 어른에게 ‘No’란 말을 못했고 잘못했을 때는 아버지가 체벌하는 것이 가풍이었다.
유대인의 어머니들은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반드시 책을 읽어주는 일이 하루일과이다. 사고력을 훈련시키고 상상력을 키우며 자식들의 머리가 아니라 개성과 소질을 중히 여겼다. 노벨 수상자의 15%가 유대인인 이유이다.
이처럼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전통관례에도 이상적인 ‘밥상머리 교육’이란 게 있었다. 한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농부의 고마움, 어머니의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면 원만한 인간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버릇을 고침으로써 절제와 타인 배려의 습관을 기른다. 특히 조손(祖孫)간의 겸상 교육은 소리내며 먹거나 어른 보다 먼저 먹는 버릇을 고쳐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예절교육이 이루어진다. 음식 남기는 버릇을 고쳐주면 절약과 자연보호 습관을 스스로 몸에 익히게 된다.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비움으로써 자기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베이고 책임감과 협동심도 길러진다. 핵가족이 되고 입시위주의 점수 따기 경쟁에 내몰리면서 ‘밥상머리 교육’도 밀려났다. 우리교육은 ‘내가 누구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에 무관심해 왔다. 결국 주인자질이 아닌 머슴 되는 훈련을 허겁지겁해 온 셈이다.
‘어린이가 행복하면 좋은 나라가 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지능과 외모는 어린이의 행복과 상관이 없다. 무엇이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감성적 느낌이 예술이요 창의성이며 위대한 문화의 모태가 된다. 교육을 출세수단시하는 욕심을 버리고 줄서는 일에 안달하지 말며 아이들의 감수성을 기르고 소질을 찾는 일이 부모들의 몫이다. ‘문화전쟁’시대에는 독창성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자기성찰을 거치면서 잘못된 심성을 스스로 정화(淨化)하고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여기에는 교사의 ‘인격적 감화력’이 촉매가 되고 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적용이 필수적이다. 국가도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학교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적어도 교육생산성은 몇 배나 높은 선진국처럼 도서관, 박물관, 각종 청소년 문화시설들을 많이 조성해야한다. 21세기는 학교 밖의 다양한 ‘교육인프라’가 교육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명문사학인 포철교육재단의 각급 학교들이 가정과 연계한 ‘인성교육’의 현장화를 선언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들을 선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메마른 교육현장에 단비 같은 낭보는 우리교육의 귀감이 될만하다.

제갈 태 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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