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TV 뉴스에 ‘구타와 과롭힘을 참지 못한 의경이 자살’했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 나왔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난 것은 최전방 GP와 GOP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두 아들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과 반년 전 성실한 제자 한 명을 군부대 내의 구타의 희생물로 저승으로 먼저 보낸 악몽 때문일까?
자살한 의경 최씨는 부대 내 고참들의 구타와 괴롭힘을 참지 못하여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동기는 소상히 밝혀질 것이지만 원인과 별개로 한 젊은이의 죽음은 그 자체로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사건 발생 이후 관계자는 ‘구타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대한민국 어느 군에서도 구타를 용인하는 부대는 없으며, 얼차려와 괴롭힘도 지나치면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타를 방관하는 상관은 더더욱 없다.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군 운영이 되고 있음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에는 아직도 구타와 괴롭힘이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해 해병대에 입대한 제자가 구타로 사망한 사건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망과 관련하여 제도권에서의 은폐나 조작은 없었으며, 군 관계자들이 유족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 줬다. 군 수사대에서 “사망 원인인 뇌혈관 파열은 구보가 원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사고 1주일이 지난 후 뇌혈관 파열의 원인은 구보가 아니라 고참의 구타였음이 밝혀졌다. 고참과 동료가 함께 구타 사실을 은폐하였던 것이다. 상부 제도권이 아니라 하부 구성원들간의 은폐와 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으며, 제도의 이름으로 남을 구타하거나 괴롭힐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사회계약론을 따른다면 군인은 국가에 의무를 다하고 있기에 이들에 대한 생명의 보호는 국가의 몫이며, 군인의 괴로움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태만이며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자식이 군대에 가 있는 부모나 입대해야 할 연령의 자식을 둔 부모라면 오늘의 이 불행한 소식에 가슴 조이지 않는 이 누가 있겠는가?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입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누가 있는가? 이런 불행을 보고도 어느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려고 할 것이며, 이런 상황을 보고도 어느 젊은이가 기꺼이 군대에 입대하고 싶어하겠는가 말이다. 전장에서 총탄에 맞았다면 명분이라도 있는 죽음이지만 고참의 구타와 갈금을 참지 못했다면 명분도 가치도 없는 비참한 죽음이요, 슬픔과 분노만 남긴 헛된 죽음이다. 이러한 헛된 죽음을 보면서 누가 군에 충성하겠는가 말이다.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젊은이의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과 구타에 노출되거나 방치된다면 군입영 제도는 권력과 금력과 탈법으로 얼룩지는 오명의 늪을 헤매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구타와 괴롭힘에 몸서리치면서도 부모와 형제를 생각하며 죽을 용기조차 가지지 못한 채 ‘절망’속에 허덕이는 우리의 아들이 있을 수 있음을 국가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때린 자도 맞은 자도 모두 우리의 아들이요 자랑스럽고 충성스런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더 이상 이들을 희생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심한 구타나 괴롭힘은 없었으니 죽음은 개인의 몫이라는 안일한 대처는 안된다. 국가는 특별조치를 취해서라도 상하간에 상호 인격을 존중하고 자유롭고도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간다운 군대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태천 <경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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