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평균 1.1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것은 출산을 꺼린다는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1970년대 초 출산율이 4.5명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는 최소 출산율이 2.1명임을 고려할 때 현재의 출산율은 정부가 국가경쟁력 약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인한 노령인구 부양책임 가중 등의 문제 발생을 우려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떠는것이 이해될만큼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과거 우리 정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와 사람들로 빈틈없이 메워진 둥근 지구모형에서 일부가 허공으로 떨어져내리는 무시무시한 포스터를 들이대며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당시 시급했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양대상인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비군훈련장에서 지원자를 뽑아 시행한 불임시술을 경험하였고, 부모들이 무상으로 지급받은 콘돔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풍선삼아 불고 다니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보조금을 받기 위해 한 번은 부인이 다음에는 남편이 다시 영구피임수술을 했다는 웃지 못할 사례들도 듣게 되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추진된 가족계획으로 70년대 후반 3명 수준, 80년대 중반 2명 미만으로 낮아진 출산율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이 단기간에 목표를 이룬 인구정책의 성공사례로 기록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여성의 희생과 고통 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피임방법과 도구가 여성을 주 대상으로 시술 혹은 실시되었고, 낙태조차도 묵인됨으로써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였다. 또한 인구억제에 따른 급속한 소자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남아선호사상은 성감별을 통한 선택적인 여아 낙태와 성비불균형 문제를 낳았다.
오늘날 일년에 낙태건수가 200만으로 우리나라가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과거가 남긴 유산임을 완강히 부인하고 성개방과 도덕적 해이의 결과라고 탓할수만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인구억제를 넘어서 우려할 수준에 이른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사람들은 육아문제를 지목한다. 자녀를 키우려면 시간과 돈뿐만 아니라 정서적 투자의 양도 막대하다.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키우려면 부모 중 한 사람이 전적으로 자녀양육에 매달려있어도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라며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 여성이 절대 다수이며,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있는 상태에서 출산은 미뤄지고, 자녀양육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녀양육의 일차적 책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인데다 믿고 맡길만한 대리양육자나 보육시설은 드물고, 자녀가 스스로 앞가림을 할 때까지 부부 중 한 명의 수입을 다 쏟아도 모자란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더 낳는다는 것은 특별한 신념과 각오 없이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여기에는 가장 활발한 사회활동이 기대되는 시기에 여성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육아를 국가적 책임으로 간주하고 사회보장제도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양육의 공공화, 사회화 주장은 당연한 요구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녀양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출산시 세제혜택, 양육보조수당 지급 등 출산장려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기업부문에서는 가족친화적 고용정책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여성의 양육역할을 사회가 공유하고자 하는 진정한 책임의식이다.
다양한 탄력근무제, 시간제, 가족간호휴가 등 가족친화적 고용정책을 시행하는 미국의 근로자들이 집에 가기보다 할 일을 만들면서까지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국가, 기업, 사회, 가족이 여성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는 출산장려를 위해 만들어내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강 세 영 <계명대 여성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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