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흘러간 영화 ‘디어헌터’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 “‘잘나갈 때일수록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금과옥조의 교훈을 얻었다.
영화 디어헌터의 배경은 미국의 철강발상지 피츠버그.
카네기를 비롯한 미국의 기업가들은 19세기 후반 오하이오강을 흐르는 유역일대를 거대한 ‘철강 계곡(Steel Valley)’으로 키웠다.
후기 산업사회에 들면서 3D 산업인 철강이 사양길로 내달았고 70년대 중반 포항제철과 신일철의 위세에 눌려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스틸 밸리’는‘러스트(Rust) 밸리’로 녹슬어 갔다. 잘 나가던 철강도시가 후발주자인 포스코와 신일철의 맹추격에 결국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잘나가건 철강도시가 철강산업의 몰락으로 폐허로 변해간는 사례가 섬뜩했다. 물론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이 앞서간 철강선배도시처럼 제철소가 서고 페허로 전락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나갈 때 뭔가 제대로 준비를 해야한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이 강하게 다가왔다.
지금은 철강 호황이 지속되고 있다. 총체적인 장기 불황가운데서도 포항은 찾는 외지 사람들은 그나마 포항은 괜찮은 편이라고 일러준다. 올 상반기 포항지역의 대표기업인 포스코와 INI스틸은 최고의 경영실적을 올렸고 근로자들에게도 특별성과급이라는 잔치상을 차려 주었다.
그러나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하는 포항의 철강대기업들도 이제 차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포스코가 미국과 유럽의 철강기업을 따라잡았듯이 당장 후발주자중국이 거센 추격전을 벌릴 태세이다.
사실은 호황일 때 장치(裝置)산업인 철강은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포스트(POST) 철강’에 대비한 투자영역을 확보해야한다.
쉽지는 않다 이미 웬만한 사업은 중소기업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손을 대고 있고 조(兆)단위이상의 유망한 대형 투자처를 찾기가 어렵다.
포항공대와 연계한 생명공학,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진출, 철강대체 신소재 개발 등 이 모두가 결과를 확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며칠전 포항철강공단에서 만난 모업체 공장장은 대뜸 한 숨부터 내쉬며 “지금까지는 잘 왔는데 앞으로 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당장 내년부터 철강 무관세가 시행되고 2008년 북경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에 중국은 철강생산과잉으로 국내에 엄청난 철강재가 역으로 치고들어 올 것이 뻔하다. 게다가 전기로업체의 주원료인 고철은 50%가까이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로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는 주력 제품인 철근시장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불황에 대비해야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2004년부터철강제품 무관세가 전면 시행돼 국내 철근시장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값싼 제품에 고스란히 노출될 지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노조도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얼마전 INI스틸 포항공장 노조는 이례적으로 노조원 소식지를 통해 “잘나갈 때 냉정하자”는 글을 실었다.
노조는 “지난 98년 강원산업시절 워크아웃당한 뼈아픈 과거를 다시 밟을 수 없다”며 불황에 대비한 경영전략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지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이때야 말로 냉정하게 불황을 예상한 총체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기업이 경쟁력을 잃게되면 그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근로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나아가서 그 지역사회는 일파만파의 데미지를 입게 된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집값이 폭락하고 인구가 감소하는 도미노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철강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포항은 외국 철강 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부자가 몸조심하듯 잘나갈 때 우리는 미래의 변화를 조망하고 예비해야 한다.
<이한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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