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상원에서 이혼 법안을 통과했을 때 교황 바오르 6세가 ‘신이 짝 지워준 것은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다’고 단호히 반대한 일이 있다. 구정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소크라테스는 악처인 크산티페의 욕설과 바가지를 탓하지 않았고 결코 이혼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엘리제궁에 들어가면서 이혼 경력이 있는 직원들을 모두 해고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떠돌이 집시족도 이혼만은 엄격하다고 한다. 결혼식 같은 것은 아예 없고 오다가다 눈만 맞으면 그뿐이지만 이혼은 철저하고 까다로운 의식을 치루어야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이혼식은 정오에 행해지며 비수로 백마의 심장을 찌르고 이혼할 부부는 죽은 말을 사이에 두고 남편은 북쪽으로 여자는 남쪽으로 떠나게 한다.
세상을 살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하는 뜻이 숨어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 이혼식을 치루고 나면 두 사람은 모두 초주검이 된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혼을 막아보겠다는 집시족 특유의 사회적 터부(taboo)로 보인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오순도순 정답게 살며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부부간의 금슬로 어떤 예술보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래서 옛날 신이경(神異經)에는 부부간의 이혼을 파경(破鏡)이라 했다.
부부가 어떤 연유에서든 따로 살게 되었을 때 거울을 반쪽씩 나누어 가졌고 나중에 새로운 애인이 생긴 아내의 거울이 까치가 되어 남편에게로 날아갔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남존여비가 철저했던 조선시대에도 칠거지악이란 몹쓸 제도가 있었지만 거기에 해당하는 아내라도 삼불거(三不去)라 하여 조강지처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루었거나, 아내가 돌아가서 의지할 곳이 없을 때는 내치지 않았다.
우리 나라 이혼율이 33%를 넘었고 10년새 3배가 늘어났다. 특히 20년 이상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중년부부 이혼율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 23일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03년 사법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4만7천5백 건으로 하루 평균 130쌍이라 한다.
배우자 부정행위가 49.3%로 전체 이혼청구 사유의 절반 정도이고 본인에 대한 부당 대우, 동거부양의무 유기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산다는 일이 시지프스가 굴리는 바위같이 지겹고 권태로움의 연속일 수 있다. 미워하고 악업을 짓고 아옹다옹 서로의 얼굴을 할퀴며 어리석게 한평생을 사는 부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다시 보면 그 몫이 자업자득인 경우가 많다.
부부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젖은 손 잡아주는 따뜻한 눈빛만으로 아내는 만가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며 남편의 굵은 주름살에서 내 탓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혼은 가정이 깨어질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방황하게될 아이들의 심성까지 황폐화되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결혼 7개월만에 몇 차례 다투다가 갈라섰다는 아들을 둔 늙은 아버지의 어이없는 한숨소리에 담뱃불을 부치며 ‘말세여 말세’라고 혀를 차는 막역지우(莫逆之友)의 맞장구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그 구정물은 주위를 더럽히게 된다. 시위를 떠난 화살을 두고 결코 후회하지 않을 확신이 없는 한 이혼은 삼가야 하고 또한 최후수단이어야 할 것이다.
제갈 태 일 <시조시인>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