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정부가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 수립 지침을 내어 놓으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혁신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포항시는 이미 첨단과학도시 포항의 비전을 실현시킬 4대 성장 엔진의 청사진을 제시해놓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지역혁신을 전담할 실무담당과도 신설하였다.
중앙정부에서도 각 부처는 지역혁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앞을 다투어 지방을 순회하면서 설명회, 포럼, 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지방과학기술 진흥과 지역연구개발 클러스터 구축안을 가지고 지난 9월 2일 포항공대에서 설명회를 개최했고, 다음 달 17일에는 산업자원부가 주축이 되어 포항테크노파크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의 지방화 추진을 위한 지역순회 포럼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렇게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지역혁신에 대한 계획들이 각 부처를 통해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포항 내부의 혁신 주체들 사이의 논의는 아직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지는 같지는 않다.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는 1970년 케임브리지 대학이 부지와 건물을 제공하면서 트리니티 칼리지에 의해 설립된 곳으로 IT, 생명공학 분야의 벤처 1천5백개와 연구원 4만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첨단과학기술단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뉴턴이 활동하던 곳으로 이 칼리지가 단독으로 수상한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프랑스보다도 많을 정도로 그야말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세계적인 학술기관이다.
또한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주변에는 아주 양호한 주거 시설이 위치하고 있고, 국제적인 공항으로의 접근성도 뛰어나 기업의 유인성이 높고 우수한 인재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지역은 또한 영국의 자존심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국 정부도 컴퓨터 분야를 비롯한 여러 첨단과학기술 분야에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엄청나게 좋은 혁신조건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비교할 때 상당 부분 실패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우선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각 기업들은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인 관계 네트워크 속에 용해되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한 반면에, 영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내의 기업들은 각 혁신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기술적 상호작용이 거의 없었다.
또한 실리콘 밸리의 벤처 산업은 자신들이 개발한 성공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한 반면 영국의 벤처 자본들은 정부의 조세 혜택을 통해 거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이렇듯 대학, 기업, 연구소 사이에 기술과 정보의 교환이 거의 없고, 기업 사이의 연결고리도 취약한 상태에서 제아무리 세계적인 대학이 주변에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 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현재 포항에서 진행되고 있는 포항테크노파크 사업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영국의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운 모습일까?
만약 우리가 실패 사례를 답습하고 있다면 대학, 기업, 지자체, 지역민 모두 새롭게 거듭나지 않는 한 첨단과학기술도시 포항의 미래 비전은 그저 실효성 없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임 경 순 <포항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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