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이 필자를 감동시킨 말이 있다.
“위대한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으로 아파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인내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설령 위대한 사람은 아니라 하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큰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하기가 쉽다.
예를 들면 장관, 국회의원, 대통령, 장군, 재벌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위대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이나 극히 재수좋은 사람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칼릴 지브란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은 결코 ‘무엇’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외형적으로 거창한 그 무엇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들 주위를 보면 국회의원이나 장관들 중에서 결코 위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 가운데에도 시골의 무명 농사꾼이나 시장의 노점상인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못난 사람들도 있다.
편하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잘못 생각하는 요즈음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을 결코 편하게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나 많을 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내 뜻대로만 되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겪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느냐이다. 요즈음의 사람들에게 이것이 부족한 것 같다.
인생의 고통을 아파하면서 그것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베드로와 예수님을 30은전에 팔아넘긴 유다스가 있다.
두 제자가 가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한 잘못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또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과 못난 점을 참아 견디어냈지만 유다스는 그 잘못과 못남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스승을 배반한 행위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유다스는 자신의 잘못과 못난 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자살한 가장 못난 사람이 되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잘 견딘 나머지 평범한 어부가 예수님의 진정한 수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천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의 반석이 되고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낚는 어부’,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의 반가움과 고마움은 일년간의 아픔과 고통을 앓아오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견디어낸 흔적을 읽을 수 있는 데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결코 학식이나 정치적인 출세에 있지 않다. 더욱이 재물의 많고 적음이 위대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위대한 자연인 좋은 가을에게서 배울 수 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고통을 견디어내고 이길 수 있는 힘도 있다.
그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패한 사람이 되고 말지만 그 고통을 아파하고 견디어내면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가을에는 고통을 아파하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박 성 대 <포항죽도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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