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듯 계미년의 끝자락에 와 있더군요. 그동안 특별히 바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건만 가을의 여유로움과 넉넉한 정취를 느껴보지도 못한채 겨울을 맞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다 보니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가운데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않으며 일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놀기만 하는가.
우리는 흔히 오늘 해야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내일은 존재하는 걸까요.
내일은 관념속에서만 살아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로 미루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느 조그마한 서점에 ‘내일은 책을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나붙자 책을 사러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일 다시 오겠다며 그냥 돌아갔습니다. 현수막을 보고 돌아갔던 사람들이 아침 일찍 서점으로 몰려 들었기 때문에 서점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한 권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출입구 계산대에서는 여전히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서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오늘은 책을 무료로 준다고 해놓고서 왜 돈을 받는 것입니까” 그러자 주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현수막을 보고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 현수막에는 내일 무료로 드린다고 했지 오늘 무료로 드린다고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오늘은 책값을 주셔야 합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현수막을 보니 여전히 ‘내일은 책을 무료로 드립니다’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들의 삶은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쳐 열심히 살려고 애쓰느데도 불구하고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남들과 불필요한 경쟁까지 하게 되고 옆사람은커녕 가족들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남을 배제한 자기만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특히 분업의 발달로 인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구 누구 할 것없이 우리 모두는 원하는 일들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요. 때로는 병에 걸려 괴로움을 겪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며 사업에 실패하여 곤경에 빠지기도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자포자기하여 술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요.
이렇듯 우리는 한 두 번은 벽에 부딪혀 “대관절 이래도 좋은가”하고 자기 반성이나 무력감 또는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 때 어려운 고비를 맞았다 할지라도 눈앞의 고통에만 정신을 팔지말고 오로지 자기만이 해낼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그것을 하지 않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사명감을 가짐으로써 역경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실천한 사람들이지 방관자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운 붕
<대성사 주지>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