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제인가 전자게시판에 신입생이 올려놓은 글을 본적이 있다. 신입생 환영회에 갔더니 한 선배가 너는 왜 공과대학에 왔느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지 그러냐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이 신입생은 어려운 입시를 거쳐 희망에 부풀어 대학에 입학했을 텐데 선배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나의 장래는 과연 어떤 것인가 하고.
또 하나는 졸업을 앞둔 한 학생의 이야기이다.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해 과학기술 분야에 좀 더 심오한 연구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연구중심대학의 의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수님들의 편의를 위한 이야기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군대 갔다 와 이제 나이가 몇인데 다시 대학원 진학을 해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별 것이 없고 빨리 취직해 돈을 버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를 들어 공무원이 되거나 公社 (한국전력 같은 곳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같은 곳에 취직해 조기 명퇴 없이 길게 돈을 버는 길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우리 연구실의 졸업생 중 일부는 30대 중반이 된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가겠다고 추천서를 받으러 온다. 무언가 마음을 주고 몰두하기보다는 현실을 떠나보고 싶은 마음을 그들에게서 읽게 된다. 누가 과연 이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나쁘다고 탓할 수 있으랴?
이런 학생들에게 과학기술 입국을 논하고 나라를 위해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술전쟁, 경제 전쟁에서 우리의 장래를 위해 젊은이들이 뛰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서 설득이 될지. 사명감과 의무감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지난 월드컵 때 우리는 국위 선양에, 그리고 우리의 자긍심 고취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축구대표팀의 선수들을 태극전사라고 찬양하였다. 긴 기간 동안 자유를 속박당하며 훈련에 열중하여 그만한 성과를 얻었을 때 이는 당연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의 많은 새싹들이 축구 선수가 되고픈 꿈에 빠졌을 것이다. 반면 그 당시 서해의 교전에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같은 나이 또래의 우리 장병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이후 언론에 종종 보도되곤 했다.
누구는 현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좀 살만하면 젊은 세대들이 힘든 일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얼마 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을 떠 올리게 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적어도 국민 소득이 연 3만불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볼 때 아직도 1만불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의 형편에서 선진국 운운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무엇을 가지고 연 소득 3만불을 달성한다는 말인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제품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는 한낮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우수한 과학기술자 없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현재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좀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일선에서 장래의 과학기술자를 양성하겠다고 뛰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위기는 실로 심각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와 대영제국의 영광은 이튼 스쿨의 교정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젊은 엘리트들의 교육과 이를 바탕으로한 국민 정신의 함양이 한 나라의 흥망과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의 과학고와 이공계 대학의 교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의 장래를 의심케 한다.
이를 단지 세상이 그러하니 어쩌리라고 넘겨버릴 수 있는 문제인가? 부존 자원이 별로 없기로 마찬가지인 일본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여 경제를 일으키는 것을 하나의 신앙으로 삼아 성공을 거두었다. 60년대, 70년대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나 보자고 과학기술입국을 선언하고 공장을 짓고 산업화를 위해 국력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과학기술 전쟁, 경제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 과학기술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들의 양성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그들의 사기를 올릴 어떠한 방안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전쟁에서 백전 백패하기 마련이다.
이 시 우
<포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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