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권 출범이후 지난 한해동안 「코드」가 주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면 올 한해는 「물갈이」가 될 것 같다. 새해 들면서 물갈이는 국민적 「술안주」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입만 열면 물갈이를 논하고 수많은 단체와 정당이 물갈이를 통한 개혁이나 구조조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 38선(38세 명퇴), 45정(45세 정년), 56도(56세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도둑놈), 625(62세까지 직장에 남으면 오적)등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회자되고 있다. 물갈이에 해당될 나이를 두고 하는 수자들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호남·영남 중진의원들의 용퇴가 강요되면서 물갈이 바람이 전면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20여명이나 되는 현역 의원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새천년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도 뒤질세라 불출마선언을 하는 현역의원들이 나타나고 있다. 불출마선언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 같다. 그 가운데는 6선 의원도 있고 초선의원도 있으며, 전국구의원도 있고 지역구의원이 있는가 하면, 참신한 의원도 있고 때묻은 의원도 있다.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대와 희망을 가져보기는 하지만 물갈이가 올바르게 되어서 정치권이 정화되고 한국정치가 올바르게 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과거에도 해방직후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선거를 전후해서나 격변기에 등장하는 화두는 항상 정치권의 물갈이였지만 물갈이가 제대로 된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 정권에서는 권력욕에만 눈이 멀어 친일파 물갈이를 못했고, 박정희 정권이나, 40여년간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3김 정치에서도 자신들의 장기지배에 대한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한 국민 호도용의 물갈이는 했으나 진정한 의미의 물갈이는 못했다. 노무현정권에서도 물갈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측근들이 부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허겁지겁 부패의 물을 들이켜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면서 과거 정권식 물갈이를 답습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물갈이 움직임도 주의깊게 보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여 정치권의 정화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물갈이 운동으로 인식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물갈이의 원칙, 주체와 대상, 방법과 절차 등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연구되었거나 고민된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갈이 운동의 뒷전에서는 오히려 물갈이의 대상이 될 인물이나 사건들이 양산되는 가운데 물갈이되어야 할 정치인이나 사건의 안전벽을 만들어주면서 물갈이 운동에 역행하고 있는 모습들까지 보이고 있다.
잘못하면 물갈이 운동이 옥석을 구분하지 못해 존경받는 정치인은 은퇴시키고 퇴출되어야 할 지탄받는 정상배는 남겨두는 그러한 반개혁성?반시대성을 띤 역행적 물갈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어느 한 정당에서 물갈이 된 부패?무능 정치인이 경쟁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개선장군처럼 추대?영입되는 철새정치인이 양산되는 것을 보아왔다. 애매한 기준을 내세워 천편일률적으로 잣대를 적용시켜 옥에 비유되는 바람직한 정치인을 퇴출시키고, 돌에 비유되는 쓸모 없고 피해만 주는 지탄의 대상이 되는 정상배들을 정치권에 입성시키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다. 그래서 정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정치권에 원용되어 정상배가 정치인을 몰아내는 옥석이 뒤바뀐 정치인 물갈이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이 경 태
<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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