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근대식 우체국이 처음 설립된 것이 120년전(1884) 甲申年이다. 말 타고 배달하던‘역참제’에서 ‘우정국’ 체제로 발전, 영국, 홍콩, 일본 등과 국제교환협정도 체결했다. 그해 11월 17일 서울총국과 인천분국이 첫업무를 개시했는데, 서울총국장은 병조참판 홍영식이었고, 인천분국장은 월남 이상재였으며, 박영효 등 임원 15명은 대체로 親日 개화파들이었으니, 이와같은 인원구성이 ‘갑신정변’의 뇌관이 되었다.
업무 개시 17일째인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 만찬회가 열렸다. 미국, 영국, 청, 독일 등의 외교관들과 국내 親淸 수구파 高官 20여명이 참석했다. 그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등 개화파가 주동이 되고 일본군대가 협력한 政變이 일어났다. 만찬장은 유혈이 낭자했고, 수구파들은 참살됐으며, 고종황제는 개화파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전 민비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이자 개화파정권은 3일만에 끝이 났고, 주동자들은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체포돼 처형됐다. 그리고 우정국은 바로 폐쇄돼 ‘역참’으로 돌아갔으며, 우정국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1895년이었으니, 갑신정변은 우리의 우편행정을 10년이나 늦췄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올해 갑신년에는 ‘독도우표’문제로 韓日간에 舌戰이 벌어졌다. 일본 外相은 “독도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독도우표를 발행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했는데, 이번에는 북한도 우리편을 들어 “일본총리가 독도를 일본영토라 떠든 것은 조선에 대한 재침략책동을 적극 추진하려는 흥흉한 속셈의 발로”라 했다.
한일간에 우표문제로 처음 맞부딪힌 것은 6·25가 끝난 이듬해인 1954년이었다. 일본이라면 이가 갈리는 이승만대통령은 독도의 全景이 그려진 우표를 발행, 일본으로 보내는 우편물에 붙였다. 일본은 이 우표에 먹칠을 해서 배달했다. 당시 일본 각료회의는 독도우표가 붙은 우편물은 일본을 모독하는 표시니 한국에 반송하자는 결의도 했으나, 그것은 ‘만국우편연합’의 규정에 위배된다고 외무성이 만류했다.
이때 발행된 독도우표가 지금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올라 있다. 2환, 5환, 10환짜리 3종류인데, 장당 7천원에서 2만5천원으로 시작했으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반송된 우편물에 붙여진 우표’라는 역사성때문에 경매가는 계속 오를 것이다.
올 갑신년에 발행된 ‘독도우표’가 판매개시 3시간만에 동이 났는데, 줄서서 기다리다가 헛걸음하고 돌아간 사람이 숱하다. 원하는 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몇몇이 ‘사재기’를 했음이 분명한데, 전지(16장) 4,000장을 사간 사람도 봤다는 네티즌도 있다. 이 우표는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올라 정가의 15배 이상에서 경매가 시작됐으며, 날마다 값이 올라갈 것이고, 장차 세월이 많이 지나고, 독도문제가 또 시끌시끌해지면 더 뛸 터이다.
독도문제로 한일간 첨예한 대립을 보일 무렵에 발행되는 독도우표이므로 인기가 높을 것이고, 재산적 가치가 막대할 것이므로 매점매석을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장 먼저 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독도사랑 영토수호를 목터지게 외치는 사람 따로 있고, 이를 이용해 돈벌이 하는 사람 따로 있다. 이러니 일본이 한국인을 만만하게 보고 심심하면 옆구리를 쥐어지르는 것이다.
독도우표는 무제한 발행돼야 한다. 독도 팔아 돈벌겠다는 ‘사재기꾼’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독도의 꽃과 새가 그려진 우표를 보며 우리땅임을 실감하기 위해서, 일본 보수 우파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모두 독도우표를 나눠가질 수 있게 해야한다. 그리고 독도우표를 사재기한 자들을 찾아내어서 “너희들 한국사람 맞느냐?” 물어봐야 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추가발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것은 일본의 심기를 더 건드리기가 겁나기 때문인가, 독도우표 사재기한 자들의 주머니를 더 불려주기 위함인가. 실로 ‘우정국 갑신정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서 동 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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