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 끼어 있었던 지난 주는 신문이 없어서 무척 허전했다. 구정 이틀 전, 연휴기간에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며칠 간의 읽을거리를 현관에 던진 것으로 세상과의 연결 통로를 오로지 텔레비전에게만 열어 놓고 신문사들은 모두 귀성행렬에 동참한 탓이다.
늘 세상살이가 궁금한 나는 내내 TV와 씨름을 했다. 화면은 시시각각으로 귀성행렬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자동차의 물결과 여독에 찌든,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가득 찬 얼굴들을 담아내기에 바빴으며 그 와중에도 검은 돈의 그림자에 갇힌 몇몇 정치인과 지지율 올리기에 바쁜 각 당 대표들의 행적을 더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도관이 얼어 터지고 정전사태가 줄 이은 한파 속에서도 TV 속의 소시민들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정치인들이 희망을 드리겠다느니, 좀 더 편안히 살게 해 주겠다느니, 앞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느니, 소주잔을 권하고 앞다퉈 손을 잡거나 등을 어루만지는 모습에 세상이 좀 달라지려나 기대를 해 보았다.
사람은 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산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매 순간 자신의 행동을 위한 판단과 선택 역시 보다 행복한 내일을 보장하는, 내일의 삶이 보다 확실한 쪽으로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내일은 또 오늘이 되어서 끝없이 밀려오는 내일을 위한 판단을 강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도중에 수없이 내려야 하는 판단을 위해서 우리들은 교육을 받으며 교육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 할 것이고 그래도 하기 힘든 선택의 경우에는 주변의 훌륭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 종교의 지혜를 다 끌어 모아도 판단을 내리지 못 할 때는 어떻게 할까? 의외로 사람들은 점을 많이 본다고 한다. 연초 한해 운수를 토정비결로 풀어보려는 서민들과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부터 당락여부까지 금 뱃지를 향한 정치인들의 발걸음에 역술인들의 집 문턱이 닳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점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사주팔자를 역술인에게 물어 미래를 미리 본다는 것이다. 사주는 주역에서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한 분야로서 주역은 자연의 이치를 형상화 한 책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자연의 모습은 첫째 끊임없이 생명을 만들어 내고 둘째 자연 속의 존재는 다 소중하다는 것이 큰 맥이다. 따라서 절대 좋은 것도, 절대 나쁜 것도 없고 적절하면 뭐든 좋은 것이고 지나치면 무엇이든 해가 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 안에서 사주 적성에 따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삶은 순조로울 것이라는 지침으로 이해하면 될까?
그러고 보니 자신의 오늘조차 선택할 수 없이 역술인을 찾는 정치인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온 행적과 자신의 능력, 가능성을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으며 그 동안의 인간관계를 분석해 보면 뜻을 품고 최선을 다 할 것인지 마음을 접고 당당한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인지는 자신이 내려야 할 판단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위해 조언을 얻을 량으로 잠깐 들렀겠지. 갑신년 새해 아침엔 나도 심심풀이로 토정비결이나 한번 볼까?
남 성 희
<대구보건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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