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가 완료되면 당사자들은 영수증을 주고받는다. 영수증은 잘 보관해야 한다.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래 관계는 명확히 해 두는 것이 좋으며 대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연말 정산을 할 때면 일년간 거래한 각종 영수증, 즉 증명서들이 제 값을 한다. 평소에는 그저 종이 쪽지에 불과하던 것이 증거물의 자격으로 정산 서류에 붙게 되면 세액을 감면시켜 가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이 영수증이다.
도장 찍힌 영수증이 중요하지만 도장 없는 영수증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상부 상조의 전통이 미풍으로 지켜지는 우리나라는 보이지 않는 영수증을 더욱 중히 여겨 확실하게 주고받는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베푼 만큼 돌아오고 받은 만큼 베풀어야 되는 것이 세상이치다.
편지의 회신은 곧 영수증이요 고마운 마음의 확인이다. 우리는 이웃의 길,흉사를 잊지 않으려 한다. 축의 든 부의 든 전하게 되면 필연코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또한 영수증이다. 그러므로 영수증은 세상에서의 나의 몫이요, 책임이며, 받은 만큼 돌려 주어야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요, 도리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을 정직하다고 위안한다. 먹은 만큼 얼굴에 나타날 때 변동 없는 사람에 비해 대접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이 때의 붉은 얼굴은 확실한 영수증이며 그 위에 콧노래라도 한 가락 흘린다면 금상첨화다.
근래 먹고도 먹지 않았다 하고 받고도 받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이 어지럽다. 영수증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특권 의식. 정치를 한다는 핑계와 위협으로 남의 돈을 빼앗고 패거리를 만들어 정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몰고 가는 그들의 심보는 어떤 모습일까.
재화의 거래는 영수증을 통하여 확인되지만 마음의 교류는 무엇을 통하여 알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쉽기도 하다. 마음은 말과 표정으로 나타난다. 따뜻한 말 정감이 가는 표정이 사랑의 영수증이다. 그러나 때론 말도 필요치 않다. 눈빛과 몸짓으로도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눈빛과 몸짓에는 드러내려는 마음 뿐 아니라 감추려는 마음도 들어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의 모습만으로도 사랑은 확인된다.
세상에는 영수증 따위가 필요 없는 사이도 있다. 혈육이라도 좋고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다. 주기만 해도 만족하고 받지 않아도 좋은 사람과의 관계다. 이들의 주고받음은 오직 사랑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기도 하고 무한정 받기도 한다.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는 계산이 필요한 사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실을 벗어난 사랑이다.
부부간의 사랑에도 영수증이 필요할까. 필요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이다. 자녀들은 부부간의 사랑행위의 확실한 증거요 숨길 수 없는 영수증이기도 하니 이를 고이 지니고 귀하게 여김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자녀를 한강에 버린 아버지가 있어 우리를 비통하게 했다. 경제가 얼어붙고 마음이 메마른 세상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이 들수록 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에서, 연인간에, 친지간에 사랑의 불꽃을 확인해 보자. 어려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등불 밝혀 서로 보듬고 어둠을 헤쳐나갈 때 밝은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서 강 홍
<경상북도교육연구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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