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두 가지의 실례를 들면서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첫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어제까지 하느님이라고 고개 숙이던 천황도 똑같은 사람이며, 야만인이라던 미국인도 친구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싫었다. 그가 좋아하는 식물에 대하여도 선생님들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학교에 가지 않고 혼자서 두꺼운 식물도감을 들고 뒷산으로 숲 속으로 다니며 나무이름을 확인하고 그 특징들을 익혔다.
어느 비 오는 가을 날, 그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기절하고 말았다. 구조대에 의하여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였지만 오랫동안 병상에 눕게 되었다. 그 해 겨울, 그는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은 혼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또래와 같이 자라고, 그 또래들은 모두 학교에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이유는 자기 아들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아였으나 청각만은 대단히 민감하였다. 미세한 소리와 리듬을 혼자서 느끼고 즐겼으니, 새 소리를 듣고 그 이름을 맞추면서 언어를 익힐 정도였다. 천부적인 음악성을 감지한 그는 숲 속에 들어가 아들은 음악을, 자신은 나무 박사로 살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학교가 필요치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장애아였고, 그를 돌보는 아들은 친구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즐거워 신명나는 학교 생활을 하였다. 자기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떠들고 분탕을 쳐도 이 두 친구는 조용히 참으며 저희들의 세계인 음악에 빠져들었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같이 듣고, 감상실에도 함께 갔다. 아들의 졸업에 부쳐 그는 시를 짓고 아들은 곡을 붙였으니, 유명한 「졸업 변주곡」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강조 점은 무엇일까. 학교는 또래 친구들이 있어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고 부대끼며 인간으로서의 정과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다. 또한 학생 시절은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배우면서 성숙해 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학교라는 환경은 필수적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다. 교육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 특성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또한 교육은 가치 지향적이고 의도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인간은 모듬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의 발전은 교육에서 비롯되었고, 교육이 있었기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신대륙을 발견하여 제일 먼저 세운 것도 학교였다. 로마병정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유태인 랍비는 점령사령관을 찾아가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건물 한 채만은 온전히 보전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것은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학교교육은 공교육을 이름이다. 공교육이 목표하는 지향점은 홍익인간이며,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르는 것이다. 학교는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자질을 갖춘 선생님과 미성숙한 학생들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에 겐자부로가 강조하듯이 뇌와 인성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많은 사람사이에서 부딪히며 자라야 한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고모, 삼촌, 사촌 등 대가족이 한 지붕아래 어울려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적절한 자극이 되어 어른은 어른답고, 아이는 아이다웠다. 지금의 핵가족화 된 가족제도 하에서는 학교가 그 역할을 맡아 하고 있으니, 학교 교육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공교육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방학에도 쉬지 않고 자기 연찬에 땀 흘리고 있다. 우리 연구원에서도 컴퓨터 심화과정, 국악실기, 한국화 실기, 댄스스포츠반 등이 개설되어 많은 교사들이 열정을 불태우고 있어, 전시회와 발표회를 보면서 기량의 향상에 크게 고무되었다.
갑신 새해의 찬란한 해가 떠오르듯 우리의 공교육도 활짝 기를 펴리라.
박 미 자
<경상북도교육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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